쿠팡 함양 물류센터, 3년 끈 지자체 ‘거북이 행정’에 결국 무산 …지자체는 '남 탓'만

입력 2023-04-14 21:17:52 수정 2023-04-14 23:12:21

쿠팡이 인구 4만명의 경남 함양군에 물류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계획이 결국 무산됐다.

함양군은 14일 "쿠팡측의 일방적인 철회 통보로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에 따르면 함양군의 토지매매 계약 등 인허가 절차가 3년 가까이 지연됐고, 보조금 지원 정책 무산으로 쿠팡이 건립을 불가피하게 철회한 사실이 밝혀졌다.

2014년 로켓배송 런칭 이후 전국 지자체와 협업해 30개 지역, 100개 이상 물류 인프라를 지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물류센터를 운영 중인 쿠팡이 지자체의 약속 불이행과 소극 행정으로 투자를 백지화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올해 완공 목표로 4년 전 추진했지만 '장기화'…3년 가까이 물류센터 부지 확보 못한 함양군

쿠팡은 지난 2019년 4월 함양군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720억원을 투자해 300명을 고용하는 연면적 7만5710 ㎡ 규모의 물류센터를 함양군에 짓기로 했다.

완공 목표는 2023년이었다. 영호남과 수도권 등을 잇는 '물류 허브'로 지역 주민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 사업은 계속 엇박자를 내면서 결국 4년 만에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함양군은 이에 대해 "쿠팡으로부터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환경영향 평가 등 신속한 인허가 처리를 위해 기관과 협의도 했다고 말했다. 또 "투자협약서에 따른 모든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함양군의 발표만 보면 쿠팡이 투자를 약속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쿠팡은 "물류센터 건립 추진 중단의 원인이 함양군의 소극 행정과 약속 불이행이지만, '사업 철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함양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즉각 반박했다.

문제는 토지였다. 토지 매매의 소유권 이전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며 장기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쿠팡은 "토지 소유권 부실 관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함양군에서 처음부터 소유권을 100% 가지고 있어야 MOU를 체결한 기업에게 즉시 토지를 매매해 공장이든 물류센터를 지을 수 있다'며 "문제는 쿠팡과 MOU만 체결했지, 실제 물류센터를 지을 부지를 확실하게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건립의 첫걸음이 토지 매매인데, 첫걸음부터 떼지 못하니 공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23년 완공 계획에 먹구름이 끼었다. 실시계획 인가 등 각종 행정절차가 늦어졌다. 업무협약 해지와 재체결을 반복하며 공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함양군도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지구단위 계획 지정 및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를 진행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쿠팡측은 "함양군이 제공하려던 토지 중 일부가 물류센터 건립이 불가능한 토지로 확인되면서 토지 매매가 상당기간 지연됐고, 결국 사업추진 일정도 3년 지연된 것"이라고 말했다.결국 올해 완공은 물론, 사실상 물류센터 건립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쿠팡 대구 풀필먼트 센터 전경. 매일신문 DB
쿠팡 대구 풀필먼트 센터 전경. 매일신문 DB

◇전국 30개 지역, 100개 물류 인프라 원활히 운영하는 배경은 지자체의 '적극 행정'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 쿠팡은 함양군과 토지매매 계약(약 46억원 규모)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번엔 보조금 이슈가 문제가 됐다.

물류센터 건립 이슈가 장기화하면서 함양군은 쿠팡측에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 각종 보조금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기업이 지방에 투자할 때 재정을 이용한 보조금 정책을 편다. 인구와 경제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의 생산력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면 보조금 신청이 가능하다.

산자부는 지난 2022년부터 보조금 신청 요건을 업력 3년에서 1년으로 낮추고, 투자기간을 연장하는 등 수혜 문턱을 낮췄다. 실제 지방에 공장 건립 등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들이 이 정책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쿠팡의 함양 물류센터는 함양군이 약속한 보조금 수혜를 받지 못했다.

쿠팡측은 "올해 1월 함양군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유로 함양군측에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수차례에 거쳐 밝혔고 협약 이행을 위한 군의 적극적인 조치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지방 투자 지원 차원에서 정부에서 장려하는 보조금을 요청했는데, 약속과 달리 이를 철회했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함양군이 쿠팡 물류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 면이 있지만, 기업 투자에 필요한 본질적인 지원책이 미비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빠른 착공과 준공을 위한 발 빠른 행정, 적극적인 인센티브 제도의 활용, 무엇보다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이 수반되지 못했다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런칭한 이후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물류시설을 짓고, 6만여명 가까이 고용했다"며 "조선업 불황으로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경남 창원부터 대구, 광주, 대전, 제주도 등에 원할하게 물류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배경은 지자체의 '적극 행정'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 달성군청 한 관계자는 "쿠팡 대구 풀필먼트 센터 진행 당시 달성군 모든 공무원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기억난다"며 "대형 사업 추진시 다양한 어려움이 있지만 지역민들의 생계와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공무원과 자치단체장의 마땅한 자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