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79,80년도 광주 '봄비'의 시대 푸른연극마을 <안부>

입력 2023-04-12 09:29:05 수정 2023-04-12 16:10:42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이지현 연출 <안부> (부제, 봄의제전, 이당금 작, 대학로 열린극장)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단 푸른연극마을 30주년 작품이다. 광주 여성 노동운동의 시대와 광주 5·18 민주화 항쟁 그날의 시간(10일간의 기록)까지 다루고 있다. 79년도 광주 여성 노동운동을 지나 5·18까지 폭력, 죽음, 노동의 역사로 직접 타격하는 방식을 피해 여성 서사 중심으로 돌려놓고 있다. 참혹한 역사는 트라우마로 봉인(封印)되어 노년이 된 극 중 인물 박 정(전서진 분)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 등장하는 두 명의 극 중 인물(여성)도 그날의 시간으로 멈추어져 기억의 자국을 씻어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연극<안부>은 그날 이후, 잊고 살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 동료인 이순(이당금 분), 고달( 윤부진 분)을 통해 아픔을 소환하며 40년 전 그날로 중첩된다. 박 정 할머니가 살아가는 현재의 '봄'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5·18의 봄'이 되고 이순, 고달과 노동운동을 하고 빵과 우유를 나르며 참혹한 죽음을 바라봐야 했던 시간이다. 극 중 인물들 20대 때 시간으로 돌려보자. 1979년도 광주 호남전기(현, 로켓트전기)가 신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여성들과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는 파업사태로 점화되었고 이듬해 '광주의 봄'은 신군부의 12·12로 이어져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광주의 그 날은, 계엄군 진압으로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대는 시민들의 죽음과 핏물로 채워졌다. 그동안 여동노동운동과 5·18의 역사는 연극, 드라마, 영화로 다양한 각도로 그려졌음에도 여성 서사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안부>은 특별하다.

◆광주 여성노동운동과, 오월항쟁 봄비의 시대

무대는 79, 80년도 뜨거운 역사갤러리에 온 것처럼 소박하다. 목재로 무대배경 프레임을 만들고 좌측 편 기둥으로 그날의 사진을 비추고 있는데, 연극<안부> 와 맞닿아 있는 시간의 현장이기도 하다. 광주 호남전기에서 일하던 앳된 여성 노동자들이 도청 분수대 앞 파업 시위에 1,200명이 어깨띠를 두르고 '노동권' 보장을 외치며 시위하는 사진 한 컷에 유독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보인다. 열악한 임금과 공장노동에도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공순이 삶이었다. 시대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우측은 극 중 인물 박정 할머니가 살아가는 집 공간이 되고 옆으로 비닐봉지로 설정된 듯한 투명 아크릴 박스 안에 우유와 빵이 수북이 담겨있고 화분이 놓여있다. 박 정 할머니는 허기진 저항의 배를 빵으로 채우고 우유로 쓰린 기억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악몽의 5월 봄은, 우유와 빵을 시민군들한테 나르던 현재시간 이다. 정치로, 역사로 온전한 화해의 치유가 될 수 없는 1979년도에서 1980년 사이 호남전기 노동 항쟁과 5·18의 봄날은 투쟁의 봄이었고, 죽음과 절규로 싸워야 하는 80년 도청 금남로의 봄이었기 때문이다.

연극<안부>은 프롤로그부터 1979년도 발표된 봄비로 시작된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이은하 봄비는 계절이 바뀌어도 아픔으로 물든 피부를 벗겨낼 수 없는 박정 할머니의 내면이다. 봄비의 악몽으로 각인되어 있고, 치유될 수 없는 시간이다. 봄비는 극과 극 사이에도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순, 고달과 헤어진 그 날은 봄비가 내려도 씻겨 낼 수 없는 통증의 아픔들이다. 연극은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97년생 MZ세대 이 봄(오새희 분)이 재가 요양복지 수급자로 살아가는 할머니 집에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서울 땐 눈을 꼭 감고 이를 앙다물어야 해. 이빨 사이로 그들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응, 약속할게. 너무 무서우니까" 할머니의 두 이빨은 굳게 닫혀있다. 79년 호남전기 여성 노동자로 어깨를 두르며 뜨겁게 저항한 시간과 5, 18 광주 민주항쟁의 기억은 우유와 빵을 모으며 노년이 되어도 이빨을 악물고 투쟁하고 저항해야 할 현재이며 봄비가 내려도 씻어낼 수 없는 23살 그날로 멈추어 있다. 그녀의 삶은 화창한 봄이 아니며 언제나 봄비로 적혀져 '위대한 산업 역군, 여성 노동자의 승리를 위하여'를 외치며 살아가는 삶이다. 봄이 와도 여전히 춥고, 폐지를 줍고, 찬바람이 들어와도 유일한 희망은 빵과 우유를 모으고 반려 화분에 물을 주며 용소의 희망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반복 되는 삶이며, 일기장은 유일하게 과거로 연결되는 기록의 역사이다.

그날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사회복지사 이 봄(이새희 분) 이다. 이름이 '봄'이다. 봄은 연극 <안부>에서 죽음과 투쟁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계절의 역사이며 현재에도 그날의 봄으로 설정하고 있는 극 중 인물이다. 일기장을 통해 할머니의 기록을 되돌려 잊혀가는 역사를 MZ세대들에게 마주 보게 하고 '이 봄'은 극 중에서 5·18항쟁의 청년이 되어 총으로, 탱크로, 헬리콥터로 전쟁의 도시가 되어버린 도청과 금남로의 시간을 마치 그날 박정 할머니 가슴으로 묻힌 총알로 망월동 묘역의 망자(亡者)가 되어버린 청년으로 동일화되어 있다. 연극은 일기장을 통해 79년부터 80년도 그날의 현장으로 극 중 장면을 만드는데, 노동자 궐기대회 흑백사진 현장으로 돌아가고 복고패션으로 '노동삼권 보장하라, 훌라 훌라, 노동삼권 보장하라 훌라 훌라'하면서도 그 시절 꿈 많은 고달은 가수를 꿈꾸고, 야간대학을 다니고 싶어 하던 이순과 '노동삼권' 보장하라며 최저임금 2만 8천 원 당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당시 박정 할머니는 오 공주 시스터즈 언니로 투쟁한 기억들이 소환되고 빛바랜 사진은 현재가 되어 파편적인 소소한 기억들이 들추어진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고달, 영부인이 꿈인 순이, 사장이 되고 싶은 옥이,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던 그 시절이 그려지면서도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삶은 "그날 이후로 산 것이 산 것이 아니니까 다 죽은 것이제" 살아도 죽어 있는 삶이다. 화장실과 쉬는 공간이 없어 오줌, 똥을 누려고 기다리다 작업 종이 울리는 열악한 노동환경 시절이 그려지고 무대는 '전두환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라며 도청광장이 된다. 박정 할머니한테 사회복지사 이 봄도 그날의 청년(여성)으로 "가면 죽어! 제발 가지마! 가지마…가면…사라지니까"하며 마지막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도청으로 달려가던 청년의 기억으로 절규하는 장면을 쏟아낸다.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트라우마로 봉인된 기억

무대는 그날 함께한 고달과 이순이 사회복지사 이 봄의 도움으로 박정 할머니 집에서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지 못한 그 날의 기억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들이 쏟아지고 그 시절 모차르트 다방 이야기, 남자한테 딱지 맞았던 (박)정이, 노동 궐기대회 이야기들을 소환하며 무대는 광주 5·18 민주항쟁의 그 날로 전환된다. 이 장면부터 시간을 반전시키며 무대는 전남도청 광장의 가두방송 소리로 바뀌는데, 이 봄은 마이크를 대고 그날의 기록을 5월 17일부터 시간대별로 격정적으로 토해내며 소리는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소리, 금남로 일대 차량 시위대의 경적, 계엄군 발포와 사망, 공수부대 집중사격, 군용헬기는 현재의 시간이 되고 박 정, 고 달, 이 순은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도청으로 달려가는 청년 용규를 붙잡고 가지 말라며, 되돌아가라는 정이 할머니 장면들, 핏물 자국으로, 총탄의 벽으로 죽음의 도시가 되어가는 그 시간에 총격으로 사망한 청년의 죽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죄책감과 개머리판으로 맞은 그 날의 흔적은 여전히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봉인되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마음으로 묻어둔 비밀들이 풀어진다.

"계엄군이 쳐들어온다고 할 때 그 새벽에 도청에서 나온 것이 누군가는 살아서 역사의 증인이 되라고 한 것이 살아있는 것이 죄스럽고 죄스러워 울지도 못했어. 소리쳐 울지도 못했어. 5월만 되면 미친년처럼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과거 시간을 마주한 박정의 할머니 고백은 자기 상처의 치유이자 망월동 묘역에 누워있는 청년을 향한 용서의 고백이다. 계엄군들이 쳐들어오고 있는 도청의 밖에서 죽음을 바라봐야 했던 이들이 향한 곳은 망월동 묘역이다. 무대는 작은 화분으로 살아 숨 쉬는 무덤의 꽃밭으로 채워지고 꽃의 주인과 청년 용규한테 이름표를 달며 안부를 묻는다. '잘 있냐고, 괜찮냐고' 하는 것처럼. 봄비는 꽃으로 채워진 화장한 삶의 계절로 돌아오면서도 트라우마를 지워낼 수 있는 삶은 역사를 용기 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에 청년의 묘역으로 향해도 박정 할머니는 여전히 온전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연출의 설정들이 시대의 아픔을 암기시키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장면을 무대로 배치하는 감각이 보이고 네 명의 여배우가 그려내는 시대는 여성 노동자의 아픈 봄으로, 80년도는 죽음과 절규로 싸워야 하는 도청 금남로의 봄이었다. 웃고, 아파하며 90분을 무대로 스며들게 하는 배우들과 연출이 연극<안부>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시대의 아픔을 가슴으로 담아내는 것이 이 연극의 장점이다. 아쉬운 것은 극의 서사와 설정(과거와 현재로 들어가는 시간의 방식,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박정의 캐릭터, 일기장의 기록, 과거를 재현하는 장면, 노동 투쟁의 방식과 5·18의 그 날의 시간)들이 익숙한 서사의 배치이면서도 그 기억을 우유와 빵, 용규를 중심으로 도청 그날의 기억으로 시간을 연결해 환기하게 하고 사회복지사 이 봄을 80년대까지 연결하는 설정이 연극<안부>을 끝까지 붙들게 만드는 동력(動力)이다. 79, 80년도의 여성 노동자의 투쟁과 삶, 군홧발로 쓰러져간 죽음의 금남로를 기억의 방식으로 무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과 여성 서사 중심으로 시간을 배치하고 들려준 것이 소재의 연극과 다른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봄비를 불러도 씻어낼 수 없는 배우의 연기는 꾸밈이 없고 광주 사투리는 아픔과 웃음으로 전진하며 극을 채워냈다. 연극<안부>은 죽음으로, 트라우마로 살아가는 그 날의 시간을 향해 안부를 묻고 있다. 극 중 이순 역할 이당금은 푸른 연극마을 대표로 이번 작품을 썼다. 배우로도 연기의 몰입감을 보여 주었다. 이지현은 배우 출신 연출가로 아비뇽 페스티벌, 호주 애들레이드, 교토 아트센터 레시던시, 베세토와 싱가폴 페스티벌 등에서 배우로 참여했다. 다국적국가들과 공동 창작 작업과 그로토프스키 메소드를 활용한 배우훈련법 워크숍 해오고 있다. 작, 연출의 대표작품으로는 <그저 사람에 대한 것>(2019), <보통의 날들>(2인극, 2022), <숲은 늘 그곳에 있어>(2022) 등이 있다.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연출 미니인터뷰

─ 연극<안부>에서 연출로 중점을 두었던 것은.

"70년대 노동운동, 5·18 민주항쟁의 시간과 제주 4·3과 정이 할머니 중증 치매까지 혼재되어있어 관객들이 공연으로서 시대와 만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거였다 "

─극 중 인물 이 봄(사회복지사)이 80년대 청년(세대)로 연결되는 점이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의 역사로 말한 표현방식이 좋았다.

"정이, 달이, 순이의 40년을 현재와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봄의 설정이었다. 5·18의 정신이 현재도, 미래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고, 봄이라는 청년이 정이, 달이, 순이의 세계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그때나 지금도, 우리가 부당함과 불공정에 맞서지 않는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5·18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게 될 테니까. 5·18 광주 민주항쟁은 우리가 계속 꺼내 놓고 말하고 보듬으며 이 세상과 이어지게 해야 하는 일이었고 연출의 역할이기도 했다"

─마지막 작은 화분으로 장면을 만들어낸 꽃밭이 인상적이다.

"다시 만난 그녀들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꽃들은 독재, 불공정, 부패, 부당함으로부터 세상을 지켜 낼 5·18정신은 생명력이기도 하다."

연극. 푸른연극마을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