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헌재 판결, 법치주의 바로 세우는 계기로

입력 2023-03-28 18:36:30 수정 2023-03-28 19:22:59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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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022년 4월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법안은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에서 부패 범죄, 경제 범죄 등 2대 범죄로 축소했다. 소위 검찰 수사권 축소법 또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법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022년 6월 27일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헌법에 보장된 검찰의 수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핵심 결론은 수사권이 검찰에만 독점 부여된 권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헌재는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줄인 것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들의 권한을 침해할 일도 없고, 특히 소송을 주도한 한 장관은 당사자가 아니어서 청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밝혔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은 화풀이하고 복수하듯이 휘둘러대던 검찰의 폭거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한 장관은 검찰 수사권 축소법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부패 범죄, 경제 범죄 등'이라고 한 점을 두고, '등'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하며 2대 범죄 이외 범죄에 대해서도 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 수사권 축소법을 무력화시켰다.

윤석열 정부 검찰은 대장동 수사를 1년 이상 끌어오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기소했지만 핵심 의혹은 빠졌다. 검찰은 압수수색만 332번 했다. 대장동 일당한테서 지분 428억 원을 받기로 약속했다는 의혹을 언론에 흘리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한층 부풀렸다. 그런데 이 핵심적인 혐의가 기소되지 않았다.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법대로 한다는 말이 법치주의인가?

박세일 서울대 법경제학 교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법대로 하는 것은 법률의 지배, 법률주의이지 결코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법치주의가 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달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법이 모든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공정한 행위 준칙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일반 원칙이어야 한다. 둘째, 이 공정한 행위 준칙은 특히 통치권자의 자의적·재량적 권력 행사를 억제하는 내용이어야 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셋째는 법의 집행이 엄정하고 공평하고 투명해야 한다. 법의 집행과 절차에 예외, 차별, 표적, 자의가 있어서는 아무리 법의 내용이 옳아도 이는 법치주의가 아니다.

반면, 법률주의는 법의 내용과 집행의 방식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법대로'만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법의 내용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법의 집행에 불공정이나 차별은 없는지 묻지 않는다. 이러한 법률주의는 일제강점기에도, 군부독재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에 법치주의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법치주의가 도입된 것은 8·15 광복 이후의 일이다. 즉, 광복 후 민주공화국 헌법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모든 법치주의의 원리가 받아들여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법으로 주권을 유린하고 인권을 말살하는 통치를 했지 법치주의가 아니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두고 여당은 헌재 재판관을 이념적으로 편 가르고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한다. 툭하면 민주당 정부와 비교하고, 민주적 가치와 공정보다는 편가르기가 일상이 되었다. 우리 국민 일부는 법치주의의 신념과 의지를 가진 지도자를 유약하다, 리더십이 약하다고 폄하한다. 그러면서 법치주의가 아닌 법률주의에 의지한 지도자를 리더십이 강하다, 밀어붙이는 능력이 있다고 감탄한다. 이런 인식이 지배하는 한 법치주의는 요원하다.

밀어붙이는 능력과 법률주의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적 지도자들을 국민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권력자들은 법률주의에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유혹을 억제할 만한 확고한 법치주의의 신념과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정치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진정 민주주의적 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