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초대석] 죽은 법의 사회

입력 2023-02-27 13:15:10 수정 2023-02-27 17:59:31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한다. 법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법조차 무너지면 어쩌나. 최소한의 도덕조차 위태롭다는 징후다. 최근 우리 사회가 그렇다. 국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판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먼저 윤미향 의원에 대한 판결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보조금 사기, 후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은 8개 혐의 중 7개가 무죄고, 1천718만원의 횡령죄만 인정되었다. 2008년 별세한 고 심미자 할머니는 일기장에 "정대협은 교양이(고양이)고, 할머니들은 생선. 한마디로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의 피를 빨아 먹는 거머리", 또는 "모금하는 이유는 윤미양(윤미향)의 재산 모우기(모으기)"라고 적었다.

1심 재판은 이런 의혹 대부분을 무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윤 의원이 "후원금을 개인계좌 등에 보관하면서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금을 관리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느냐"고 비판할 때, 윤 의원은 "정의연의 활동과 회계 등은 정말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사받고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판결대로라면, '철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판부 역시 "시민이 십시일반 기부한 금액으로 운영되기에 누구보다 투명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었다"며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로 윤 씨는 국민의 혈세를 받는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화를 더 돋운 건, 판결 뒤 미소가 가득한 윤 의원의 얼굴이었다. 더욱이 1천700만원, "그 부분도 횡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고 악마가 된 그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윤 의원은 무죄가 아니다. 더욱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써야할 돈을 횡령한 것이다.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판결도 상식에 어긋난다. 대장동 개발업체에서 6년간 근무한, 평범한 30대 초반의 곽 전 의원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법원은 곽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아들이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무관하다는 거다. 법은 물론 상식보다 훨씬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판결대로라면, 이제 어떤 뇌물이든 독립한 자식에게만 주면 된다. 소위 50억 클럽의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검의 딸도 대장동 업자로부터 11억원과 판교 아파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출국금지 관련 불법 행위로 기소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이규원 검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의 수호자들이 가짜 사건 번호까지 만드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런 행위가 불법이지만,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돼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목적만 정당하면 절차는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법 절차(due process of law)는 법의 대원칙이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경찰이 묵비권을 고지하는 적법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어니스트 미란다의 연쇄 성폭행조차 무죄로 판결했다.

한마디로 법의 위기고, 상식의 위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예전에는 권력에 대한 굴종이나 법조계의 이익카르텔이 문제였다. 여기에 '진영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정치적 편향에 따라 판결이 다른 것이다. 진보 성향의 이른바 '우국민'(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이 진영화를 주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자식과 형님이 구속돼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막고자,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세워 윤석열 검찰총장을 심하게 겁박했다.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나왔겠나. 그러나 권력에 붙고, 진영논리를 추종한 판·검사들도 적지 않다. 조국 수사 때는 국민들조차 두 편으로 갈라졌다. 정권의 진영논리가 사법부를 망치고, 국민까지 두 쪽 냈다. 재난재해보다 더 무서운 게 법과 상식이 무너지는 일이다. 재난은 극복할 수 있지만, 법과 상식이 무너지면 아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