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신부
학창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갔다. 친구가 뭐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가 아닌 친구들이 좋아하는 치킨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한 친구가 거짓말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난 끝까지 치킨을 좋아한다고 우겼다. 괜히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가 친구 중 한명이라도 못마땅해 하거나 치킨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서로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그러다보니 내 술잔이 비어도 친구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 몰래 조용히 잔을 따랐다. 한 친구가 그걸 보고 자신이 따라주겠다고 말했지만, 난 원래 혼자 따라 먹는걸 좋아한다며 이게 편하다고 말했다. 혹시나 내 술잔에도 신경 좀 쓰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그렇게 행동했다. 불편해지느니 나 혼자 불편한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내 마음에 사기를 쳤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마음에 사기 치기'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애써 그게 아니라고 가슴을 속이고 더 작은 것을 원하거나 다른 것을 원하는 척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선택이 나 하나의 불편함으로 모두를 편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함께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게 만든다. 가령 내가 친구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나는 다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다면 여러분은 맘 편히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불편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친구가 나를 배려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라는 말씀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솔직하게 살면 된다는 말씀처럼 들리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인지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이 성경말씀은 '솔직해질 용기를 가져라'는 의미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솔직할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포장지로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모든 것에 솔직해질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습관이 돼버리면 우리는 충분히 솔직해도 괜찮은 상황에서조차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속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 상대방도 나도 모두가 불편해지는 일임을 이제는 알아야한다.
배려는 나 역시도 상대방으로부터 배려 받을 준비가 돼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배려가 불편하다면 내가 하는 배려 역시도 상대방에게 불편함만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제 내 마음에 사기 치는 일은 그만두고 솔직해질 용기를 키워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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