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상호 저주의 정치서 탈피해야

입력 2023-01-10 10:34:00 수정 2023-01-10 19:08:49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여야의 극단적 대결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여야가 시원하게 정치 현안을 해결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정치 뉴스가 보기 싫을 만큼 투쟁과 대결의 정치는 반복된다. 아예 정치 뉴스는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은 자리만 보존된다면 '적대적 공존'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여야 정치인이 정치적 사안마다 격돌하고 국민 여론도 두 편으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싸운다. 언론마저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소위 정치 해설가는 두 편으로 나누어 싸움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러다 곧 이 나라가 망할 것 같지만 용케도 버티는 형국이다. 경제, 안보 등 총체적 위기 앞에 상생의 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 이 한국적인 거부와 저주 정치의 끈을 어떻게 끊을까.

한국적인 극단적 대결 정치는 결국 상호 저주 정치로 연결된다. 이러한 극단 정치의 원천적인 책임은 정치인 모두에게 있다. 조선조 당파 싸움 이상의 저주의 파행 정치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양극의 정치에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 인정은 굴종이나 배신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구도에서 정치인들은 모두 진영 보스에 맹종해야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한국 정치에서 진영을 옮긴 정치인들이 평생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7체제의 소산인 소선거구제는 결국 양당만 살아남는 극한 대결 정치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모순 구도하에서 정치인들의 소신 발언은 사라지고 진지전에 충실해야 자신의 정치생명이 연장된다. 이 공간에 특정인에 대한 팬덤 정치까지 가세하여 '내로남불'의 정치, 승자 독식의 정치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비정한 정치 공간에서 정치인들은 공천만이 정치생명 연장 수단이 된다.

이러한 대결의 정치가 굳어진 데에는 국민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유권자들이 스스로 선거 승리만을 위해 파놓은 정치인들의 농간에 부화뇌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는 오래전부터 정치적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정치에 과잉 참여하는 잘못된 풍조가 조성되었다. 중도 소신파나 온건파는 기회주의자로 몰려 버린다. 우리 사회에 범람한 좌우 극단 디지털 매체가 이들을 이념의 포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사이비 이념이 '애국'이란 미명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저주한다. 가짜 뉴스나 거짓 정보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디지털 극단주의자(digital extremist)들이 극성을 부린 결과이다. 이들은 자신을 '애국'으로 위장하고 상대를 '매국'으로 규탄한다. 이렇다 보니 순수 친목회나 동창회에서도 정치적 견해차로 격돌하기도 한다. 형제가 부모님 제사 자리에서 언쟁을 벌이다 의절(義絕)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처럼 정치권의 극한 대결이 사회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고 언론이 이를 조장함으로써 상호 저주 정치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간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인-과잉 지지자-사이비 언론의 악순환(vicious circle) 고리가 한국 정치의 실종을 초래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누구나 상생이나 협치를 외쳤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불행히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야의 극단적인 거부와 저주의 정치는 더욱 굳어져 버렸다. 선진 민주 국가에서 흔한 크로스보팅도 한국 정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의 실정을 과거 정부 탓으로 비난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무지 무능 성토에 집중하고 있다. 보통시민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극한 저주의 정치가, 한심스럽고 후진적인 정치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우선 정치인들의 각성과 실천적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의 잘못에 대한 상호 날 선 비난과 사법 처리만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건 없는 긴급 회담도 필요하다. 대통령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등 정치 제도 개혁안은 협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극좌우에 편향되어 사이비 이념에 빠진 과잉 유권자들의 반성과 자제도 수반되어야 한다. 양극 정치를 옹호 조장한 언론은 각성하고 '정론직필'의 자세를 회복하길 바란다. 새해에는 제발 상호 비난과 저주라는 극단 정치의 언어 굴레에서부터 벗어나 보자. 일선의 정치인, 유권자, 언론의 뼈를 깎는 자성만이 우리의 실종된 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