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 선거제 개혁의 '나비 효과'

입력 2023-01-09 11:00:42 수정 2023-03-13 17:59:12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던진 중대선구제 개편을 높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

윤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현행 소선거구제에 대해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현행 소선거구제도가 사표(死票)가 많이 발생해 국민 뜻이 제대로 선거 결과에 반영되지 못한다"며 "3월 중순까지 내년에 시행할 총선 제도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선거에는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며 실제로 전 세계에 다양한 제도가 채용되어 있다. 그리고 선거제도의 차이에 따라 선거 결과, 선거운동의 효과, 민주주의의 질이 달라진다. 이 밖에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주요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대의 민주정치의 본질이란 선거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가령, 선거제도 자체가 왜곡되어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보다 유리하고,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보다 유권자와 접촉하고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 공정하지 못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등 불리하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는 제대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투표가 끝난 후 각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 선거제도가 왜곡되어 소수 득표를 한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는 경우에도 민의를 의정에 정확히 반영시키지 못해 대의 민주주의가 퇴보된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공학적으로 흐르지 않고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졸속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제도 변화의 효과를 심층 분석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의 조응성을 고찰해야 한다. 선거제도는 전반적으로 비례성과 대표성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에만 매몰되면 정파적 이익이 우선되면서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도출하기 어렵다. 통상 대통령제에서는 소선거구제, 내각제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훨씬 더 맞는 제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작년 6·1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 지역구 1천30개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다. 선거 결과 109명의 당선자 중 소수 정당 후보는 4명으로 전체 당선자의 3.7%에 불과해 양대 정당으로의 집중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 승자독식과 영호남 지역 패권정당체제,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선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제도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둘째,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공천제도와 같은 선거 충원 구조에 대한 개혁 논의가 필수적이다. 핵심은 국민 또는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것을 정당법 또는 선거법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천 혁명이 정치 개혁을 위한 알파요 오메가다. 미국의 경우 1903년 위스콘신주에서 처음으로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공천 방식인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를 주법으로 정했다. 이런 공천 혁명으로 보스 정치와 머신 정치는 사라졌다. 최근 미국 하원의장 선거에서 다수당인 공화당에서 반란표가 나온 것도 미국식 공천제도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선거제도 개혁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스웨덴 제도를 벤치마킹해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은 손을 떼고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에 '선거제도 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개혁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의석 규모와 상관없이 1명만 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고 과반수 이상을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하면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위원회에서 과반 의결된 사항에 대해서는 국회가 의무적으로 추인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분명, 국민의 지지를 받는 선거제도와 공천제도의 질적 변화는 퇴보하는 한국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엄청난 '정치판 나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