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이슬람 문화 뒤섞인 다양성의 상징
대서양 접해 연중 온난 남한의 5배…영화·팝송 '카사블랑카' 낭만 더해
그리스 신화 속 첫 이주민 '아틀라스'
유럽·아프리카 대륙 갈라진 틈새로 지중해 생겨나 '지브롤터 해협' 이뤄

카사블랑카(Casablanca). 모로코는 몰라도 모로코의 대서양 연안 도시 카사블랑카는 익숙하기 십상이다. 2022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4강 돌풍을 일으켰다. 예선에서 강호 벨기에를 물리치고,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무적함대 스페인을 격침시킨 뒤, 8강전에서 호날두의 포르투칼마저 돌려세웠다. 4강에서 프랑스에 비록 패했지만, 후반 경기력은 압도했다.
모로코의 4강 진출은 1930년 닻을 올린 월드컵 역사에서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 팀 가운데 처음이었다. 모로코는 어떤 나라인가? 면적이 44만6천㎢이니 한반도의 2배. 남한의 5배다. 국토 북부는 지중해, 서부는 대서양에 접해 연중 온화하다. 남동부는 건조한 사하라 사막이다.
인구 대부분은 베르베르(Berber)족, 중세 유럽에서 무어(Moor)인이라고 부른 검은 피부의 코카서스 인종이다. 국민의 99%는 이슬람교도로 아랍어를 쓰지만, 프랑스어도 통용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고 클레오파트라의 잔영이 서렸을 뿐 아니라 로마와 이슬람 유적이 오롯한 문명의 교차로 모로코의 역사를 들춰 본다.

◆제우스에게 패한 아틀라스, 모로코 정착
1942년. 2차세계 대전 기간 중 개봉된 영화 [카사블랑카]. 성격파 험프리 보가트와 최고의 여배우라는 찬사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의 무대는 모로코 카사블랑카다. 전쟁 무풍지대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중간 기착지 포르투칼 리스본으로 가기 위해 모여들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제목은 카사블랑카지만, 촬영은 전부 헐리우드 세트에서 이뤄졌다.
이와 관계없이 올드팬들에게는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벌이는 진정한 사랑의 진수에 가슴 먹먹해지는 명화로 손색없다. 2015년 개봉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영화 [스펙터]의 사막 장면 역시 모로코가 배경이다. 80년대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팝송이었다. 스페인어로 카사(Casa, 집), 블랑카(blanca, 휜색)이니 흰 집이라는 의미다. 카사블랑카로 널리 알려진 모로코는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와 형제로 거신(巨神, Titan)족에 속한다. 제우스 중심의 올림포스 12신이 거신족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제우스는 벌로 아틀라스에게 천구, 즉 우주를 받치고 있으라고 명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것은 아틀라스가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우(杞憂).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중국 기나라의 우라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를 몰라서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장소는 지구 서쪽 끝 오늘날 모로코다.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 속 첫 모로코 이주민이라고 할까...

◆헤라클레스, 지중해 탄생의 주역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가 고르곤 3자매 가운데, 막내 메두사의 목을 베 돌아가다 아틀라스의 곁을 지났다.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돌로 변한다. 페르세우스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아틀라스에게 메두사 머리를 보여줬다. 그 결과는? 아틀라스가 그만 돌이 되니... 모로코에서 알제리를 거쳐 튀니지까지 뻗친 아틀라스 산맥의 탄생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페르세우스의 증손자인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이곳을 찾았다. 아틀라스의 딸 헤스페리데스가 운영하는 사과 과수원의 황금 사과 3개를 따러 가는 중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물길을 내기 위해 아틀라스 산맥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그 바람에 유럽과 아프리카가 갈라지고 그 틈새로 아틀라스의 바다, 대서양(Atlantic Ocean)에서 물이 들어와 지중해가 생겼다. 갈라진 틈을 고대 서양 역사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지브롤터 해협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외손자, 고대 모로코 마지막 왕
신화를 지나 역사적으로 모로코에 온 첫 손님은 페니키아였다. 페니키아는 현재 서양 모든 언어에 사용하는 문자, 즉 라틴문자의 원형 페니키아문자를 B.C11세기 경 만든 민족이다. 오늘날 레바논을 거점으로 지중해 전역으로 장사하러 다니던 페니키아가 B.C813년 튀니지에 만든 나라가 한니발의 카르타고다. B.C261년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로마에 패해 약화되자, 모로코에 첫 독립국가가 나타난다.
마우레타니아. 알제리까지 포함해 번영하던 마우레타니아는 B.C146년 카르타고 멸망 뒤 로마와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B.C33년 로마의 협력국가 사실상 속국에 이어 로마의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서기 44년 로마에 병합된다. 이때 마우레타니아의 마지막 왕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외손자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B.C31년 그리스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의 패권을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혈전을 펼치고, 패한 안토니우스는 자결한다. 이듬해 B.C30년 안토니우스의 부인 클레오파트라도 뒤를 따른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더의 부장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이집트에 세운 그리스 국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다.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결혼해 2남 1녀를 낳았는데,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그중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를 로마로 데려갔고, 협력국 마우레타니아 왕 유바 2세와 결혼시켰다. 여기서 태어난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러니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외손자가 마우레타니아 마지막 왕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베르베르, 로마, 그리스 혈통이 합쳐진 다문화의 상징이었다.

◆680년 이슬람으로 변한 모로코와 이베리아 반도
볼루빌리스는 모로코에 남은 최대 규모 로마 유적지다. 현장에 가보니 지금도 로마 시대 개선문이나 신전, 저택 유적이 잘 남아 탐방객을 맞는다. 로마제국 아래 번영하던 모로코를 429년 게르만족 일파 반달족이 황폐화시킨다. 반달리즘이라는 문명파괴의 주역, 반달족이 물러나고 6세기 잠시 동로마 제국 영향력에 들지만, 7세기 후반 아랍인이 찾아온다.
661년 등장한 이슬람 우마니야 왕조의 장군 무사 이븐 누사이르가 아프리카 책임자로 모로코까지 온다. 누사이르는 베르베르족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덕에 오히려 많은 베르베르인이 자발적으로 이슬람에 귀의했다. 모로코는 680년경 이렇게 이슬람 영역으로 바뀐다.
모로코가 이슬람화된 시점, 지중해 건너 유럽 쪽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게르만족의 일파 서고트족이 다스렸다. 당시 모로코 지역의 서고트족 영토 세우타 책임자는 율리아누스였다. 그는 자신의 딸이 서고트왕 로데릭에게 강간당한데 앙심을 품고 아랍 장군 누사이르에게 서고트 왕국을 치라고 부추긴다.
망설이는 누사이르 장군에게 서고트 왕국에 보화가 넘쳐나며 대형 궁전, 무엇보다 미인이 많다고 유혹한다. 고민하던 누사이르가 유럽침략의 결단을 내린다. 711년 베르베르족 이슬람 군대를 동원해 헤라클레스의 기둥 넘어 이베리아 반도 점령을 명한다. 이슬람 군대는 노원의 불길처럼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을 휩쓴다.
◆지브롤터 해협, 모로코 '타릭' 장군에서 유래
이슬람 선봉대는 모로코 토착 베르베르족 군대였다. 누사이르 장군은 베르베르 출신 타릭 이븐 지야드(Ṭāriq ibn Ziyād) 장군에게 서고트 왕국 점령 임무를 맡겼다. 아랍어로 자발(Jabal)은 산이다. 타릭 장군의 베르베르족 군대가 헤라클레스의 기둥 건너 첫발을 내딛은 산을 타릭 장군이 상륙한 산이라고 해서 '자발 타릭(Jabal Ṭāriq, 타릭의 산)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지브롤터(Gibraltar)로 바뀌었다.
지브롤터는 이슬람 영토에서 훗날 기독교 스페인 땅, 이어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영국으로 넘어갔다. 아랍에서 온 우마이아 왕조, 모로코 베르베르 이슬람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남긴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다음 호에 이어간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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