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학교] 미래 인재 키우는 AI교육 선도…김천초교

입력 2022-11-27 13:07:25 수정 2022-11-27 18:18:12

화재 두번, 교실 불타는 시련…문중·졸업생 새 연혁지 복구
다양한 분야 수상 경력 화려

김천초 20회 졸업사진(1927년). 김천초등학교 제공
김천초 20회 졸업사진(1927년). 김천초등학교 제공

김천초등학교는 지역 최고(最古)의 학교다.

김천초등학교는 한학 위주의 서당교육을 넘어 신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지던 1907년, 김산현(현 김천시)의 유지 석치업, 이병재, 문하영, 남준희, 배우열, 이건수 등이 뜻을 모아 전부터 있어왔던 야학을 개편하고 남산 기슭에 있던 고운사를 교사로 사용해 '광흥사립학교'로 개교했다.

개교 당시 교사 2명, 학생 60명이었으며 교과목은 국어·산술·지리·역사·창가·체조·일본어 등을 가르쳤다.

1911년 5월 공립으로 개편되면서 교명을 '김(금)산공립보통학교'로 바꿨다. 1914년에 행정구역이 김산현(군)에서 김천군으로 바뀌면서 그해 12월 25일 '김천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됐으며 1937년 4월 '김천남산정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일왕의 칙령으로 '김천동부국민학교', 1949년 4월 '김천국민학교', 1996년 3월 '김천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2년 1월 제111회 졸업식에서 35명의 졸업생을 배출, 졸업생 수는 모두 2만4천997명에 달한다.

김천초등학교는 두 차례의 화재로 교실이 모두 불타는 시련을 겪었다. 1945년의 1차 화재로 학교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나 복구 후 겨우 5년이 지난 1950년 8월, 6·25 전쟁으로 인해 다시 학교가 불탔다.

불탄 학교를 복구하는 데는 지역의 문중과 졸업생들의 노력이 있었다. 지역에서는 각 문중별로 유사를 두어 학교를 위해 추렴한 내용을 기록한 문중 서지가 종종 발견되곤 한다.

6·25 전쟁으로 인해 멀쩡한 교사가 단 한 동도 없을 정도로 무너진 학교를 복구한 데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군인 중 군번 1번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22회 졸업생 이형근 장군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두 번의 화재로 인해 김천초등학교 역사의 절반이 사라져 학교 연혁지도 새로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개교한 개령초등학교 연혁지를 참고해 졸업생 등 많은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새롭게 연혁지를 만들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못했다.

김천초등학교는 100년을 훌쩍 넘는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근직 전 내무부·농림부 장관을 비롯해 김사엽(16회) 전 서울대·경북대 교수, 엄민영(17회) 전 내무부 장관, 최석채(19회) 전 대구매일·조선일보 주필, 경향신문 사장, 강중구(22회) 박사, 여석기(23회) 전 경북대·고려대 교수, 박정수(34회) 전 국회의원, 외교통상부 장관, 마용수 전 김천시장 등이 모두 김천초등 출신이다.

또 김천초등학교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위상을 높였다.

1997년에는 김천 지역 최초 소년체전 육상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1977년 제1회 남녀 미술실기대회 최우수학교 입상, 1998년 제1회 창의력올림피아드 대상, 2000년 제28회 화랑문화제 무용 금상. 2001년 제1회 경상북도 환경노래부르기 대회 전체 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더불어 1981년 수업심사 우수표창, 2012년 학교평가 우수, 2014년 교육과정 우수학교 공모전 우수, 2017년 100대 교육과정 공모전 우수를 수상했다.

현재에는 21세기 미래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AI교육 선도학교를 운영하며 인공지능을 대비해 미래교육을 위한 환경 구축 및 융합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오정인 김천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의 안전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학생은 물론 교사, 학부모 및 지역사회 등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천초등학교 전경. 김천초등학교 제공
김천초등학교 전경. 김천초등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