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입력 2022-11-17 15:02:46 수정 2022-11-18 16:49:04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10대 이후로 음원 순위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10대가 된 딸 덕분에 최근 노래들을 듣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생각날 때마다 재생하는 노래까지 생겼다. 바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윤하가 올해 3월 30일에 낸 정규 6집 타이틀곡이다. 처음 발매된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각종 음악 페스티벌과 대학 축제에서 '사건의 지평선'을 열창하는 윤하의 모습이 SNS 등을 통해 공유되는 등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발매 222일 만인 11월 7일 멜론 톱100 1위에 올랐다.

일단, 제목이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니 가사 내용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블랙홀을 중심으로 빛이 빠져나올 수 있는 구역과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이 만나는 경계를 뜻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사이로 나눠진 두 지점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윤하는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을 사랑과 이별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별 이후, 서로 그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별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바로 그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을 담았다.

'사건의 지평선'을 듣게 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겪은 예기치 않은 이별을 상기시켜 주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 사회는 에스피씨(SPC) 그룹 계열사 빵 공장에서, 그리고 이태원 골목에서 너무 뜻하지 않은 황망한 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처음에 그러한 사건들을 접했을 때는 어떻게, 아직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아서 마치 다른 세계의 일인 듯 아득함을 느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이후 관련 책임자의 사태 인식이나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보면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여러 비극적 참사를 통해 얻었다고 믿었던 경험과 교훈은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존재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철학자 장 뤽 낭시에 따르면 집단 구성원이 '공동체'를 자각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은 바로 집단 내 타자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이다. 우리는 모두 타자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경험한다. 타인의 죽음으로 '상실의 경험'을 겪게 되면서 우리는 공동체가 자기만의 공간이 아닌, 타자들과 함께하는 관계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낭시가 말하는 공동체란 느슨한 연결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특정한 사건을 기점으로 도래하는 물음이다.

낭시의 성찰을 적용해 보면, 에스피씨 그룹 계열사 빵 공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의 죽음과 이태원 골목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종류의 질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이 사건들이 잠재되어 있던 우리 사회의 공동성을 호출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순수한' 애도만을 요구하며 여러 물음과 감정의 표현을 침묵시켰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면피성 발언만을 되풀이하다 공분을 샀다.

이 참담한 이별이 행정적 책임 소재를 추궁하고 질책하는 것만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부는 상실의 경험 앞에 떠오른 여러 물음이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만들고, 어떠한 구조적 결함이 이러한 참사로 귀결됐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끝내 필요한 조치를 실행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별개의 세계가 아닌 동일한 사건의 지평 안에 함께 존재함을 느끼며, 국가라는 공동체가 존립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