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105돌 탄신일에 새 박정희 탄신을 기원하며

입력 2022-11-11 12:06:23

박정희 대통령 추모 행사가 올해부터 탄신기념 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박 대통령의 업적의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새마을 운동으로 보릿고개의 질곡의 삶을 건국이래 가장 잘 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았다는 분명한 팩트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한다.

탄신105돌에 즈음하여 오늘은 박정희대통령의 또 다른 측면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 박 대통령의 철학과 인간적 스케일이다.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가 첫 삽을 뜰 때 대한민국 등록자동차는 약 6만대 수준이였다. 예산도 국가예산의 4분의1가까이 되었다. 당시 일부정치인들이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며 반대운동을 하며 집회를 하며 도로에 드러눕기도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통당시 서울서 부산까지 달려가도 마주 오는 차가 몇 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야당은 당장의 수요측면을 따졌을 것이고 박 대통령은 공급이 전혀 새로운 수요를 낳을 수 있다는 경제의 또 다른 측면을 생각했을 것이다. 경제학자도 아닌 분의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 이였던 셈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담대한 스케일에 어찌 보면 전율이 생길 정도다.

둘째. 박 대통령을 만든 것은 호남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5·16이후 1962년 5대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면 총투표자수 11,036,175표 중 박 대통령은 4,702,640표를 득표하여 4,546,614표를 받는 윤보선 후보 보다 156,026표를 더 득표하여 1.5%차의 신승을 하였다. 이 결과는 전라남·북도에서만 350,297표차의 압승이 결정적 승리 원인 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배경에 호남인들의 결정적 지원이 있었고 영호남의 정치적 합작품이 '박정희대통령 만들기'였다는 것도 생각하는 하루였으면 한다.

셋째. 박 대통령은 끊임없이 미래담론을 주창하였다는 점이다. 검소함으로 무장하고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그의 결의는 견고한 것이었다. 1967년의 연두 교서("우리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세대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합시다 1967,1,17")를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대구경북의 가장 큰 현안인 대구경북통합신공항문제에서 박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와 오버랩 됨을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경북의 핵심공약 사안 이였고 경상북도와 대구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국회의원,도의원,시의원 전원의 최종합의를 이끌어내었다. 기적에 가까운 합의였다고 생각한다.

이젠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제정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 국회통과를 위해 이미 대구경북국회의원들의 눈부신 활약과 노력을 지근에서 목격하고 있어 한분 한분께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그리고 먼 훗날 후손들이 대통령과 경상북도지사, 대구시장, 원내대표를 비롯한 대구·경북국회의원 모두의 탄신일을 오늘처럼 기리게 될 날을 상상해본다.

1976년 박정희대통령께서 경북대 치대앞에서 삼덕로타리로 지나가며 어린 소년에게 닫혔던 승용차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박상현〈경상북도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