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긴 화폭을 맵시 있게 활용해 화려한 꽃과 꽃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를 그린 남계우의 화접도다. 꽃과 나비는 꽃밭의 자연스러운 일상적 광경이면서 '꽃 본 나비'라는 말처럼 남녀 사이 음양의 원리와 유비되는 소재다. 화조도에서 새 대신 나비를 그리며 나비라는 주제를 조선 화단에 유행시킨 남계우는 남나비, 남접(南蝶)으로 불린 나비그림의 대가다. 나비는 '나비 접(蝶)'이 '팔십 질(耋)'과 중국어 발음이 같아 80의 나이인 장수를 상징하는 상서로움도 있다.
꽃은 각색 모란 세 송이다. 백모란은 홀로 우뚝하고 그 아래 분홍모란, 홍모란은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는 듯하다. 화접도는 모란의 부귀와 나비의 장수, 건강을 축원하는 길상화다. 남계우는 자신의 장기인 나비를 모란과 결합시켜 이 둘을 고운 채색의 장식미와 정교한 묘사의 사실감으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주제에 어울리는 제화와 인장으로 화면의 품격을 높였고 여백을 세련되게 활용해 화려함에 아취를 더했다.
제화에 당시(唐詩)를 인용하고 자신의 평을 덧붙였다.
천향야염의(天香夜染衣)/ 밤에는 천상의 향기 옷에 스미더니
국색조감주(國色朝酣酒)/ 아침에는 천하제일 미인 술 취한 듯 아름답네
이하는 당(唐)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정봉(李正封) 모란시야(牡丹詩也) 자연(自然) 유부귀번화기상(有富貴繁華氣象) 당시(當時) 칭위제일(稱爲第一) 일호산인(一濠散人) 서우(書于) 월홍소방(月虹小舫) 이다.
밤에는 향기에 취하고 낮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는데 꽃 색이 마치 술기운 오른 미인의 얼굴빛 같다고 했다. 이 시로 인해 모란을 천향, 국색으로 부르게 된다. 천(天)이나 국(國)으로 모란을 형용한 것은 황실에서 사랑한 꽃이기 때문이다.
당나라에서 신라 왕실로 모란꽃 그림과 씨를 보냈다. 삼국사기에는 진평왕 때라고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선덕여왕 때라고 한다. 신라에서도 궁중에서 모란을 가꾸기 시작했다. 모란을 화왕(花王), 화중왕(花中王), 부귀화(富貴花)라고 한 것은 원래 왕의 꽃이었기 때문이다. 꽃 중의 왕으로 찬사를 받는 길상의 꽃이 모란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의 영향이지만 모란은 원예와 문학과 회화와 문양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
모란꽃의 영향이 문화에 그쳤을까? 어쩌면 대국인 이웃나라 황실의 꽃 모란이 부귀영화를 인생 목표로 삼는 우리의 심성까지 추동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화려한 모란꽃그림을 보면서 문득 든다.
미술사 연구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