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4400년 전 학생 모습과 3800년 전 점토판 교과서

입력 2022-08-30 13:48:57 수정 2022-09-05 18:01:09

파피루스에 쓰고, 점토판 외우고…열공엔 동서고금이 없었다

1.메소포타미아 학교 교재. 함무라비왕의 아들 삼수 후나왕 때 만들었다. B.C18세기. 루브르 박물관
1.메소포타미아 학교 교재. 함무라비왕의 아들 삼수 후나왕 때 만들었다. B.C18세기. 루브르 박물관

찜통더위와 늦장마 홍수 피해를 뒤로하고 올여름도 꾀를 보인다.

이제 처서도 지나 부쩍 선선해진 날씨는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로 통한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도 이번 주 모두 가을학기 문을 열었다.

새로운 학기를 맞으면 학생들은 인쇄 내음 물씬 풍기는 새 책을 펼쳐들고 부푼 꿈을 키운다. 시민들 역시 시집이나 소설, 교양서적을 손에 잡는 일이 잦아진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반구는 9월부터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다.

신석기 농사문명을 일군 세계 4대문명지는 모두 북반구에 자리한다. B.C 33세기경, 그러니까 5천여 년 전부터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토판으로 책을 만들었다.

나일강에는 파피루스, 황하 유역에서는 목간과 돌비석을 책의 소재로 썼다. 독서의 계절 가을 새 학기를 맞아 책의 역사를 짚어본다.

◆메소포타미아 B.C18 세기 점토판 수학, 천문학, 종교 교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보자.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전시실로 가면 다양한 점토판들이 진열창을 가득 메운다. 눈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온다.

7각형 수메르어 학교 교재 점토판.
7각형 수메르어 학교 교재 점토판.

함무라비 법전의 함무라비왕. 그 함무라비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삼수 후나왕 시기 교육용 문학교재와 사전, 쓰기, 천지창조 같은 종교 교재들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물론 유프라테스강 진흙으로 만든 B.C 1750년경 점토판 교재다. 진흙으로 판을 만들어 쐐기 문자를 적은 뒤, 햇볕에 말려 구웠으니 돌처럼 단단해져 수천 년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온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 점토판의 문장을 암기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새로운 점토판으로 공부한다는 내용도 실렸다.

요즘 학생들 공부 방식이나 공부하는 주제 역시 비슷하다.

메소포타미아 수학 점토판. 대영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수학 점토판. 대영박물관

메레루카 마스터바. 지하무덤에 화려한 채색벽화와 동상이 오롯하다.
메레루카 마스터바. 지하무덤에 화려한 채색벽화와 동상이 오롯하다.

무엇보다 수학이나 천문학 관련 점토판 교재에서 알 수 있듯이 메소포타미아는 현대 과학문명의 시원으로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의 교육체계를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런던 대영박물관에도 천문학과 수학, 각종 점성술 관련한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학교교재들을 전시 중이다.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 이스탄불도 마찬가지다.

16-17세기 유럽과 지중해, 서아시아를 호령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토카프 궁전에 붙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점토판들이 즐비하다.

그중 7각형 점토판은 3800년 전 직업의 종류와 이름을 정리한 사전형태 학교교재다. 함무라비 왕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왕국 B.C18세기 점토판으로 교과서의 기원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후 신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 제국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점토판 사전과 책이 제작돼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집트 B.C 24세기 무덤 벽화 학생 모습

이집트로 가보자. 수도 카이로 근교의 사카라는 이집트에서 최초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곳이다. 신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전지전능했다는 임호텝이 B.C27세기 건축을 감독한 조세르 파라오의 계단 피라미드는 찬란한 피라미드 역사의 개막을 알렸다.

이곳에는 계단 피라미드 외에도 왕족이나 귀족의 여러 마스타바(무덤)들이 자리한다.

공부하는 학생. 메레루카 마스터바. B.C24세기. 사카라
공부하는 학생. 메레루카 마스터바. B.C24세기. 사카라

이 가운데 우리네 단군할아버지 시기에 해당하는 B.C24 세기 6왕조 테티 파라오 시기 재상을 지냈던 메레루카의 마스타바는 4천4백여 년 가까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하 무덤 내부의 메레루카 동상은 물론 다양한 당시 풍속이 벽화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2명의 학생이 펜을 들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적으며 공부하는 모습이다. 귀에는 여분의 펜까지 꽂고 말이다. 고대 이집트 필기도구는 파피루스라는 공책이나 책의 소재, 그리고 잉크와 펜을 담는 필통으로 구성된다.

이런 도구를 갖춘 그림은 물론 박물관에는 당시 필기도구 실물 유물도 남아 유구한 학문의 역사를 전한다.

이집트 신전 경전 샤바카 스톤. B.C8세기. 대영박물관
이집트 신전 경전 샤바카 스톤. B.C8세기. 대영박물관

돌에 새긴 이집트 경전의 역사를 보려면 런던 대영박물관 이집트전시실로 가야 한다. 로제타스톤이나 람세스 2세 두상 같은 이름난 유물 사이로 검은색 비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발굴 당시 이정표로 쓰이던 샤바카 스톤(Shabaka Stone)이다. 태양 햇살이 퍼지는 양옆으로 상형문자가 빼곡한 비석은 경전이다. 사연은 이렇다.

B.C 750년 경 이집트 남부 오늘날 수단에 쿠시라는 흑인 왕조가 있었다. B.C 747년 쿠쉬왕조의 지방 호족 가운데 제벨 바르카에 거점을 두던 카흐타의 아들 피안키(피예)가 북으로 올라와 이집트를 정복하고 25 왕조를 연다. 피안키의 동생 샤바카는 이집트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특히 이집트 신앙에 깊이 빠진다.

샤바카는 이집트 신전에 남은 자료들을 샅샅이 조사하던 중 파피루스 경전이 벌레에 훼손되는 것을 보고 돌에 새기는 석경을 고안해 냈다. 대영박물관에 남은 1.37m 크기 샤바카 스톤은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천지창조 과정을 다룬다.

◆그리스, 플라톤이 세운 최초의 학교 아카데미아와 파피루스 교재

무대를 그리스 아테네로 옮겨보자. B.C5 세기 이미 현대 학문과 문학, 미술, 민주주의 기초를 훌륭하게 일궈낸 그리스 문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테네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소크라테스가 거닐었을 고대 도로와 감옥은 물론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터도 오롯하다.

리케이온이 비교적 발굴이 잘된 데 비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일부 터만 발굴됐을 뿐 대부분 터는 현대 건축물 아래 묻힌 상태다.

유학의 기본 교재
'플라톤의 아카데미(Plato's academy)', 혹은 '철학자들(Philosophers)'. 등장인물이 모두 파피루스 스크롤 책을 손에 들었다. B.C1세기 모자이크. 나폴리 국립박물관.

이 아카데미아에서 펼쳐졌을 교육현장을 떠올려 보려면 이탈리아 폼페이로 가야한다.

폼페이 포럼에서 북쪽 베수비오 화산방면 베수비오 성문 앞 시미니우스 스테파누스 빌라에서 B.C1세기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출토됐다.

지금은 나폴리 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니 다시 발길을 나폴리 국립박물관 2층 모자이크 전시실로 돌린다. 모자이크 이름은 '플라톤의 아카데미', 혹은 '철학자들'로도 불린다.

플라톤이 B.C 380년 경 아테네에 세운 그리스문명권 최초의 학교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모습을 담았다.

등장인물 7명 가운데 앞줄 5명은 그리스 특유의 오른쪽 어깨나 상반신을 드러내는 히마티온을 입었다. 가운데 앉아 지시봉을 들고 천구도를 가리키는 인물이 스승 플라톤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을 보자.

상반신을 드러낸 4명 가운데 3명이 손에 파피루스 스크롤을 들었다. 지식을 담은 책이다. 지중해에는 나일강 삼각주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었다.

◆중국 감숙성 박물관 2천 년 된 한나라시대 '맹자' 죽간

희평석경. 175년 제정된 국가 검정교과서. 한나라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에 세웠다. 서안 비림 박물관
유학의 기본 교재 '맹자'의 장유유서 내용이 담긴 한나라 시대 죽간. 돈황출토. B.C2-A.D1세기. 난주 감숙성 박물관

무대를 이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서양학문을 일구던 시기 동양으로 옮겨보자.

중국문명의 젖줄 황화 상류인 감숙성의 성도 난주 감숙성 박물관은 희귀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죽간이다. 감숙성 서부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 사막지대다.

나무나 섬유로 만든 유물이 썩지 않고 수천 년 보존되기도 하는 이유다.

감숙성 박물관에 소장된 죽간은 석굴로 이름 높은 돈황 등에서 발굴한 서한(후한, B.C206-A.D8년) 시기로 2천년이 넘었다.

가늘고 좁게 자른 대쪽 위에 붓으로 촘촘하게 적은 내용은 다양하다. 편지부터 행정업무, 유학 경전까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죽간은 공자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와 맹자가 직접 썼다는 맹자 사상의 핵심 '맹자'다.

감숙성 박물관에 남은 '맹자'의 내용은 장유유서(長幼有序)관련 대목이다. 유학의 기본 서적인 사서오경은 물론,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만큼 독서를 많이 했다는 공자 위편삼절(韋編三絶)의 책도 죽간첩이었다.

◆1천800년 된 검정교과서 한나라 희평석경

황해도 안악3호묘 벽화. 손에 목간첩을 들고 묘주에게 보고하는 시종. 357년 제작.
희평석경. 175년 제정된 국가 검정교과서. 한나라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에 세웠다. 서안 비림 박물관

B.C 11 세기부터 중국 역사의 중심지로 군림해온 서안 비림박물관으로 가보자.

'비석의 숲(碑林)'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중국 역사를 아로새기는 다양한 비석들이 가득하다. 2000년 중국 비석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가운데 한나라 시대 만든 비석 희평석경(憙平石經)이 눈길을 끈다. 희평(憙平)은 광무제 유수가 수도를 서안에서 낙양으로 옮겨 재건한 후한의 황제인 영제 유굉의 연호다.

172년부터 사용됐다. 석경(石經)은 돌에 새긴 경전을 말한다. 희평석경은 175년(희평 4년) 유학의 주요 경전을 표준화하고자 국가에서 '논어'를 비롯한 7개 경전을 검증해 돌에 새긴 비석이다.

낙양의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에 세워 학생들이 올바른 경전 내용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거다. 요즘 국정교과서 혹은 검정교과서다.

황해도 안악3호묘 벽화. 손에 목간첩을 들고 묘주에게 보고하는 시종. 357년 제작.

◆고구려 안악3호묘 벽화 4세기 목간

희평석경이 만들어진 200년 뒤 설립된 고구려 최고 교육기관 태학에서는 어떤 책으로 공부했을까? 남한강변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으로 가보자.

동네 아낙들 빨래터 받침돌로 쓰이던 넓적한 돌이 5세기말 고구려비로 1979년 판명되면서 한국 고대사가 다시 쓰인 현장이다.

국보 205호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다. 묘실 벽에 화려하게 그린 벽화는 1500-1600년 전 고구려 아니 우리 민족의 풍속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풍속화첩이다.

대동강 남쪽 황해도 안악군 안악 3호묘는 벽화로 이름높다.

근엄한 표정으로 앉은 묘주 양옆으로 신하 혹은 집사로 보이는 인물이 한 명씩 서 있다. 왼쪽 인물은 오른손에 붓, 왼손에 목간 하나를 들었다.

무엇인가 쓰는 자세다. 오른쪽 인물은 목간을 엮은 목간첩(帖)을 들고 읽는 모습이다. 무덤 제작연도는 357년, 고국원왕 시기다.

소수림왕이 372년 태학을 설립하기 15년 전이다. 아직 종이가 보편화하기 전 안악3호묘 벽화 속 목간첩처럼 태학에서 배우던 사서오경도 아마 목간첩형태였을 것이다.

5천여 년 전 인류사에 문자가 등장한 이래로 학교가 등장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던 책은 비록 재질은 달라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동서고금에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