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고무신도 때워 신으시고…항상 나보다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셨지요"

아버지, 어머니, 오랜만에 편지로 인사드립니다. 지금은 비록 제 곁을 떠나 멀리 하늘로 가셨지만, 저를 포함한 부모님의 여섯 남매는 항상 부모님의 깊은 뜻을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세상을 떠나실 때보다 세상은 더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두 분께서 보여주셨던 세상에 대한 책임감과 따뜻함을 떠올립니다. 항상 나보다 남에게 주는 걸 좋아하셨지요. 두 분 다 자신에게 돈을 쓰는 걸 너무 안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고무신도 구멍이 나면 때워서 신으시고, 길거리에 있는 못이나 잡동사니 중에 쓸만한 것이 있으면 무조건 들고와서 쓰셨죠.
남들은 '구두쇠'라고 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쓸 돈을 아껴서 항상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산 건 다른 사람들이 알런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던 과수원 부지가 훗날 아파트 개발 부지로 들어가서 받게 된 보상금조차도 당신에게 쓰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시는 걸 더 좋아하셨고 유언으로 남은 재산 중 일부를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만드셨지요.
아버지는 마을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항상 도움을 주셨었습니다. 마을에 호적이 없는 사람에 대한 사연을 듣고는 그 분의 호적을 만들어드리려 사방팔방 돌아다니셨던 걸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책임감과 정직함을 가르치기 위해 한 가지 시험방법을 만드셨었죠.
돈을 전달하는 심부름이나 학교에 공납금 등을 내야 할 때 봉투에 1천원 정도를 더 넣어 그 돈이 돌아오는지를 확인하셨지요. 남은 돈을 아버지 몰래 제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지만 항상 정확하고 정직한 아버지를 보면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배운 아버지의 가르침이 성인이 된 뒤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늘 저의 마음 속 하나의 기준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오는 사람들을 빈 손으로 내보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주변에 밥을 굶는 사람이 있는 걸 너무 안타까워 하셨지요. 집 앞에 구걸하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아예 큰 상을 차려 배불리 먹이고 우리 집 과수원에서 나던 사과 몇 개라도 들려서 보내셨습니다.
그런 따뜻한 마음씨를 배웠던 덕분일까요, 지난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를 했는데 '아너 소사이어티'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 당신이 자식들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게 불만스럽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희들은 부모님의 깊은 사랑과 큰 뜻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저희 6남매가 다 제대로 자리잡고 사는 것도 따지고보면 부모님이 널리 베푸신 사랑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막상 부모님과의 일을 추억해보니 잘 해드린 것보다 잘 못해드린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 잘 해드려야지 했지만 막상 여유가 생기니 제 옆에 없으시다니요. '효를 다 하고자 하나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후회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너무나도 가슴에 가시처럼 콕 박힙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보고 싶어지면 경주에 있는 두 분의 산소로 가곤 합니다. 때로는 당신이 귀여워하시던 손자 손녀들도 데려갑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자기 엄마에게 받은 용돈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드리겠다고 소주를 사 오던 손녀의 모습을요. 얘들도 훌쩍 커서 마흔을 넘겼습니다. 조만간 손주들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문의 전화: 053-251-1580
▷사연 신청 방법
1.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혹은 매일신문 홈페이지 '매일신문 추모관' 배너 클릭 후 '추모관 신청서' 링크 클릭
2. 이메일 missyou@imaeil.com
3. 카카오톡 플러스채널 '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검색 후 사연 올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