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근대미술관, 왜 대구여야 하나] 〈상〉 근대미술 역사 담을 충분한 '그릇'

입력 2022-07-07 06:30:00

국내 근대미술사 담을 공간 부재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요구 높아져
“강력한 근대미술 뿌리 가진 대구,
그 역사 담을 그릇 가질 때가 됐다”
자료 확보·당위성 공감대 형성 필요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때와 땅' 전시. 대구 근대미술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룬 전시로, 3개월간 2만1천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대구미술관 제공

한국 근대화단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많은 예술가의 터전이었던 대구. 숙원사업이었던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이 최근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며 추진 가도를 달리게 됐다.

그간 근대작품을 전문적으로 수집, 연구, 전시하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기에 이번 국정과제 채택은 국내 예술계에 희망을 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대구에서, 국립근대미술관은 지역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은 미술관을 통해 어떻게 문화분권의 성공 사례를 낳았을까. 국정과제 포함 이후 관련 사업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앞으로 세차례에 걸쳐 전반적인 부분을 짚어본다.

◆대구, 국내 근대미술의 중심지

대구는 어느 지역보다 자발적으로 근대미술의 수용이 이뤄진 곳이자, 국내 화단을 이끌어온 탄탄한 저력이 이어져온 곳이다.

전통화의 서병오와 서동균, 서양화 개척자인 이상정, 이여성, 이인성, 이쾌대 등 한국 근대화단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많은 예술가가 활동했으며, 대구 미술문화 형성에 기틀을 마련한 영과회, 향토회 등이 결성되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 전시회인 대구미술전람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수석큐레이터는 "이인성과 이쾌대, 남관 등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고향이며 활동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점도 대구 근대미술의 강점이다. 계산성당과 교남YMCA, 무영당, 조양회관 역시 대구 근대미술의 공간적 특성이 주는 중요한 콘텐츠가 된다"고 말했다.

조은정 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고려대 초빙교수)는 지난 1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대구 시대별 시각예술 클러스터 조성방향 모색 정책포럼'에서 발제를 통해 이같은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에서 서구미술의 수용, 그에 대한 반응과 전개가 다채롭게 이뤄진 곳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대구 뿐이다. 특히 수묵이나 서예, 서양화 등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전개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며 "나아가 미술인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며, 미술전람회를 통해 대중에게 미술을 알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는 대구미술의 성장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대구는 강력하고 오래된 근대미술의 뿌리를 가진 장소이자 전국구의 미술행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장이다. 미술 스스로 아카이빙되는 장소로서 대구는 10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미술과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 그 역사를 담을 그릇을 가질 때가 됐다"고 했다.

이쾌대, 항구, 1960, 33.5x44.5cm, 캔버스에 유채, 대구미술관 소장(이건희 컬렉션).
이쾌대, 항구, 1960, 33.5x44.5cm, 캔버스에 유채, 대구미술관 소장(이건희 컬렉션).

◆국립근대미술관 필요성 대두

그럼에도 대구를 비롯해 국내 근대미술 역사를 담을 공간의 부재는 지속적으로 안타까운 점으로 지적돼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은 있으나 근대미술을 전문적으로 수집, 연구, 전시할 국립근대미술관은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근대미술 관련 전시를 선보여왔으나, 공간적으로 작품을 소장하거나 상설전시의 역할을 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인구 250만 명이 사는 대구에 시립미술관 한 곳이 지어진 것이 이제 겨우 10년이다. BTL(임대형 민간투자) 방식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시설의 절반만을 사용해왔는데, 그곳마저 주로 동시대 미술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전 위주로 운영돼왔다"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이후 재건, 개발 시대 등 지난 시대의 미술 자산을 수집하고 상설 전시를 해야 할 공간은 아직도 부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대구를 비롯한 국내 근대미술 작품,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담당할 국립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구(舊) 경북도청 후적지 문화예술허브 조성'이 포함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다는 것이 문화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변경될 여지는 있으나, 일단 문화예술허브 내에 국립근대미술관 등 근대시각예술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안을 담고 있어서다.

더욱이 대구는 근대미술에서 의미있는 활동이 많았던 지역인데다 최근 대구간송미술관 착공, 대구미술관 부속동 리모델링 등 시각예술 관련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힘을 더한다.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 1934, 75x60cm, 종이에 수채, 대구미술관 소장(이건희 컬렉션).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 1934, 75x60cm, 종이에 수채, 대구미술관 소장(이건희 컬렉션).

◆근거 자료 확보 우선돼야

다만 이러한 인프라 조성에 앞서 콘텐츠 확보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꼽는 과제다. 근대 시기 활동한 작가들의 유족이 3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작품 등 유품이 유실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김태곤 큐레이터는 "전시 팜플렛 하나도 소중한 퍼즐 조각이 된다.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와 발표했던 작품, 전시를 열었던 공간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어서다. 하지만 이러한 자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발굴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유족 등이 이를 기증하거나 매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술관을 짓는 것만 중요한게 아니라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 수많은 근대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대구에 근대미술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해답이 된다"고 했다.

박민영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은 "근대미술 도입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근거 자료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두루뭉실한 현재의 연구들을 좀 더 세밀하게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끌고나가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적으로 지역에 국립근대미술관이 들어서야 하는 당위성과 타당성을 피력하고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학술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전문성 있는 이들로부터 객관성을 확보하고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러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