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와 커피 한잔]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대구는 자수(刺繡) 의 도시…그 역사 모으고 있어"

입력 2022-03-14 11:19:30 수정 2022-03-14 18:52:47

최근 실과 바늘에 대한 에세이 형식의 책 펴내
자수에는 우리 할머니와 우리 선조의 이야기 담겨 있어
수를 놓음으로써 소통하고 정서적 안정감 찾을 수 있어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각양각색의 베개모를 모아놓은 전시품이 놓여 있다. 전창훈 기자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각양각색의 베개모를 모아놓은 전시품이 놓여 있다. 전창훈 기자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자수(刺繡)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경숙(59) 박물관 수 관장이 최근 자신의 4번째 책인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를 펴냈다. 이 책은 실과 바늘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이 관장은 수(繡)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사람 얘기가 들어있다고 소개했다.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는 어떤 책인가?

-실과 바늘은 어찌보면 사소하지만, 그 속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수를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미적 의미를 넘어 그에 따른 상징이나 의미, 이유 등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책이 별로 없어 이번에 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펴냈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평소 선조들의 수 놓은 작품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자주 들르는데, 그 때마다 무궁화꽃으로 수를 놓은 작품이 많이 보였다. 너무 흔하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처음엔 옛날 사람들이 무궁화꽃을 특히 좋아했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배경을 자세히 알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1931년 고(故) 남궁억 선생님이 우리나라 광복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러넣기 위해 무궁화꽃을 바탕으로 하는 자수 본(기본 모양)을 제작해 전국 여학생들에게 이를 본떠 무궁화꽃 수를 놓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당시 간도 독립 투사에게 보내는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수를 통해 독립 운동을 벌인 것이다.

▶자수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수를 놓다보면 실과 바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결이 표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행위를 통해 마음이 동화된다. 수를 놓다보면 집중력이 생기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옛말에 '수(繡)는 수(修)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수를 놓으면 그 만큼 마음이 단련된다는 의미다.

각종 여성 커뮤니티에도 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수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고 행복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적잖다. 서로 만든 것을 자랑도 하면서 자존감도 높이는 등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의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추위를 견디고 생존할 수 있었다. 바늘의 사용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생존의 도구로써의 가치가 컸지만, 지금은 소통과 문화적 가치가 더욱 커졌다.

▶자수 박물관을 열게 된 계기는?

-엄마로서 자녀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젊었을 때 다른 많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이를 충족할 장소나 프로그램을 찾아봤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박물관 학교가 필요하겠다 생각했고 이를 체계화할 전문 인력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특히 수를 좋아했다. 옛 선조들의 작품에서 민화 외에는 색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수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색깔이 있기 때문에 끌렸다. 한국의 색이 뭘까라고 화가로서 관심을 가졌고 그렇게 수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됐다. 결국 2010년 11월에 '박물관 수'를 개관했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이 각양각색의 베개모를 모아놓은 전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창훈 기자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이 각양각색의 베개모를 모아놓은 전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창훈 기자

▶12년 동안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나름 보람도 있었지만, 사실 경제적인 이유로 힘들 때가 많다. 운영비와 인건비 등에 비해 수익이 별로 나지 않아 근간히 운영하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사립 박물관이다보니 관람료를 봤는데, 시민들이 관람료가 있으면 웬만해선 찾지를 않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2016년까지 '사랑 티켓'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사랑 티켓은 관람객이 일정 부분을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로 당시엔 학교나 각종 기관 등에 이를 홍보하면서 유치 활동을 많이 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활동을 할 만한 메리트가 없어 안타깝다.

박물관은 전문성이 없으면 그냥 전시장일 뿐이다. 꾸준히 교육프로그램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연구 기관 성격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관객과 여건이 필요하다. 대구에 사립박물관이 5군데가 있는데, 전국 박물관 백서에 따르면 사립박물관 숫자가 전국 하위권이다. 사립박물관이 많아야 지역 곳곳에 풀뿌리 문화 활성화가 가능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목표가 있다면?

-대구가 '자수의 도시'라는 걸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항상 단아한 한복을 입었던 고(故) 육영수 여사의 한복에 수를 놓은 장인도 대구 사람이었다. 대구에 한복 수를 잘 놓기로 유명한 자수 명인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돌아가셨다. 이들의 작품을 모으고 이들의 역사와 자료 등을 모아나가고 싶다.

또한 많은 카페와 MOU를 맺어 카페마다 바느질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을 확보하고 싶다. 거기에는 '자수 키트'가 있어서 누구나 수를 놓을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면 자수의 대중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