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중환자실에서 2주 동안 버티신 후 갑작스럽게 떠나셨습니다
경상도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은 축구 관람과 베트남 여행뿐입니다
꽃피는 겨울에 축구를 맞이하는 이 시기가 오면 항상 그 상황이 생각납니다. 대구스타디움 시절 저 혼자서 즐겼던 대구FC의 경기를 아버지는 집에서 혼자 심심하다며 저를 따라나섰습니다. 왠지 그날은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대구는 파란색이지" 라며 아버지의 외투를 바꿔서 입혀드리고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서른 넘은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만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경기 기록을 다시 보니 2015년 3월 29일 홈 개막전에서 대구FC는 강원FC를 상대로 이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억 속에서는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단둘만 가진 추억만이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파란색 옷을 입히고 스타디움 근처 칼국수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이 선수가 누군지, 저 선수가 누군지 설명을 했던 그 날은 또렷합니다. 추억이 없어서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고 잊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기억 속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묵묵하고 담담하게 가족의 뒤에 계셔서 오늘처럼 기억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추억거리가 없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추억이라고는 축구를 함께 본 것과 가족 전부가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 것이 전부니까요. 베트남여행의 마지막 날 조카와 매형들까지 전부 있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건배사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해를 넘기시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의 2주 동안 아버지는 깨어나면 숨쉬기 힘들어 수면제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희미하게 깨어났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지금은 며느리가 된 제 아내의 존재도 모르고 돌아가실 것 같아 귓속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와 결혼할 생각이니 빨리 눈을 뜨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숨결은 멈추고 말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에 함께한 추억이 없다는 사실보다 평소에 추억조차 만들지 못한 미련함이 더 슬픕니다. 유일한 아들은 술 한잔을 함께 해드리지 못했고, 자식에게 전해 줄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 슬픕니다.
거긴 어떠세요? 여긴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입니다. 마스크를 끼고 사는 게 익숙해지고 조금 뒤면 새로운 대통령도 뽑게 되네요. 어느덧 조카 은우는 말도 잘합니다. 저희도 재미나게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은 별로 없지만 남은 가족들과 재미난 추억 많이 만들겠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가족들이 함께한 추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간간이 꿈에 놀러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끼리 너무 많은 추억이 쌓여 아버지만 외롭지 않게 중간중간에 이야기 전해드릴 수 있게요. 그립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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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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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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