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사투, 지쳐가는 코로나 의료진…"사명감만으론 힘들다"

입력 2022-01-18 15:50:16 수정 2022-01-18 22:37:16

[코로나19 악몽 2년] 보건소 직원들, 추위 속에서 선별진료 업무에 원래 업무까지 겹쳐 힘들어
코로나19 전담병원 의료진,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
전화상으로 재택치료 환자 상태 진단하는 데 어려움 따르기도
병원 내 확진자 관리, 백신 접종 업무 담당하는 감염관리센터도 피로감 호소

18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추위를 쫓기 위해 난로에 손을 녹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8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추위를 쫓기 위해 난로에 손을 녹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2년간 지속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방역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진 덕분이었다.

의료진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일상도 없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업무 과부화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의료진의 피로도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전담병원, 보건소 등 방역 현장에서 확진자 선별 진료와 환자 치료에 여념이 없는 의료진들을 만났다.

18일 오전 9시쯤 대구 동구 검사동 동구보건소 선별 진료소.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줄이 10m 이상 이어졌다. 영하 8℃의 한파에 롱패딩과 모자, 목도리로 무장한 피검사자들 속에서 얇은 흰색 비닐 방호복 차림의 방역요원들이 눈에 띄었다.

방호복 안에 붙인 핫팩과 작은 난로만으론 칼바람을 막기엔 부족했다. 간이 천막 안에선 보건소 직원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화를 내는 민원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보건소 직원들은 검사소 근무 외 원래 업무가 따로 있다. 평일 기준 하루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검사소에서 근무한 뒤, 사무실로 복귀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주말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선별진료 근무를 하고 있다.

의료진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동구 보건소 관계자는 "차라리 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좋겠다. 기약 없는 선별 진료 근무에 직원들이 모두 지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영남대병원에서 선별진료소로 파견 온 간호사 최모(28) 씨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 너무 힘들다"며 "의료인력, 체계, 지원도 부족한 상태에서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를 돌보려니 힘에 부친다. 사명감만 가지고 일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18일 오전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코로나19 치료병동에서 간호사들이 확진자를 돌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8일 오전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코로나19 치료병동에서 간호사들이 확진자를 돌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 대응 감염병전담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피로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하 대구동산병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다시 지정된 지 500일을 맞았다. 대구동산병원은 2020년 6월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됐으나 같은 해 8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은 500일 동안 고생한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작은 파티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600일은 맞이하지 말자"는 다짐을 나눴다.

이곳 코로나19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옥(49) 코로나19 상황실 책임간호사는 "최근에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보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의 폭행, 폭언으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병원 규칙을 따르지 않는 분들 때문에 힘이 들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환자가 다시 증가하면서 인력 대비 중증 환자들도 덩달아 늘어나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컸다"며 "환자가 많아지다 보니 병원 규칙을 지키지 않는 환자들도 늘어나 업무 과부하가 걸렸다"고 했다.

이곳 코로나19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옥(49) 코로나19 상황실 책임간호사는
이곳 코로나19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옥(49) 코로나19 상황실 책임간호사는 "최근에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보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의 폭행, 폭언으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고 했다. 김재성 인턴기자

무증상·경증 환자들이 재택치료에 들어가면서 전화로 환자를 진단하는 데서 오는 새로운 고충도 생겼다. 오랜 기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되다 보니 코로나19 환자만 받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일반 환자가 찾지 않는 문제도 있다.

남성일(53) 대구동산병원 부원장은 "무증상·경증 환자의 경우라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데 전화만으로는 이를 시시각각 체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고령층 재택치료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데 서투르기 때문에 상태를 파악하기 더 어렵다. 보다 자세한 진단을 위해 화상통화를 요청해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들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오랫동안 코로나19 전담병원 역할을 해오다보니 현실적인 고충도 생겼다"며 "시민들 중에선 '코로나19 전담병원'이 코로나19 환자만 받는 병원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 일반 병상 가동률은 50%도 안 되는 등 병원을 찾는 일반 환자가 줄면서 병원의 경제적인 상황도 안 좋아졌다"고 했다.

남성일(53)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부원장은
남성일(53)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부원장은 "무증상·경증 환자의 경우라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데 전화만으로는 이를 시시각각 체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고령층 재택치료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데 서투르기 때문에 상태를 파악하기 더 어렵다"고 고충을 전했다. 윤정훈 기자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병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염을 관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감염관리팀의 업무 피로도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병원의 감염관리팀은 원래 병원 내 폐렴감염, 혈류감염, 요로감염 등 전반적인 감염 관리를 담당하는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병원에서 발생하는 확진자의 역학조사와 밀접접촉자 관리에 병원 관계자 대상 백신 접종 업무까지 도맡고 있다.

김현아(41) 계명대 동산병원 감염관리센터장은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확진자의 역학조사와 밀접접촉자 관리에 병원 관계자 대상 백신 접종 업무까지 도맡고 있다. 윤정훈 기자
김현아(41) 계명대 동산병원 감염관리센터장은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확진자의 역학조사와 밀접접촉자 관리에 병원 관계자 대상 백신 접종 업무까지 도맡고 있다. 윤정훈 기자

김현아(41) 계명대 동산병원 감염관리센터장은 "대형병원은 하루에 오가는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진자도 자주 발생한다"며 "확진자가 발생하면 보통 하루 안에 역학조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자정쯤 퇴근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느라 코로나19 초창기 1년은 아들과 딸이 깨어있는 모습을 못 봤을 정도로 정말 바빴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이 도입되고 나서는 3천명에 이르는 병원 직원, 실습생, 용역회사 직원 등 병원 관계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업무가 힘들다"며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설득하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