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독립운동가 후손 예우에 소홀함 없어야

입력 2022-01-18 11:21:34 수정 2022-01-18 19:56:38

전병용 경북부 기자
전병용 경북부 기자

이달 12일은 경북 구미시에 의미 있는 하루였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96년 만에 구미 고향으로 돌아와 묻힌 날이었다.

구미 출신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許蔿 1854~1908) 선생의 친손녀인 고(故) 허로자 여사(매일신문 2021년 12월 28일 등 보도)가 할아버지 품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허 여사의 유해(遺骸)는 구미 공설납골당인 숭조당 2관에 안치됐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아 남편과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유해를 5촌 조카 정따라마 씨가 숭조당에 봉안을 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인 왕산 허위 선생의 생가 터와 묘소가 있는 구미시 임은동으로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허위 선생의 가문은 3대에 걸쳐 14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보기 드문 가문이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어떠한가.

그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다. 항일운동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허위 선생 후손들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일본 감시를 피해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니 살림살이조차 변변치 못할 정도였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품어 주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향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적 궁핍으로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가보훈처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매일신문의 '독립운동가 후손 조국 땅에 묻힐 곳 없다'는 보도 이후 뒤늦게 구미시가 그의 유해를 구미로 안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신문의 보도가 없었다면, 그의 혼은 할아버지 품이 아닌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구미시는 그의 유해가 구미 임은동에서 23여㎞ 떨어진 구미 옥성면 구미시공설숭조당이 아닌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의 생전 소원이던 "할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다"는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구미시는 5년째 답보 상태에 빠져 있는 구미 산동면 물빛공원 내 14명의 독립운동가 조형물 설치와 왕산광장 및 왕산루 등 왕산기념공원 사업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앞으로 구미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찾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예우하는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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