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에도…급식소 줄서는 허기진 사람들

입력 2022-01-02 14:50:00 수정 2022-01-02 20:38:25

한 끼 기대 노숙인·홀몸노인…-6℃ 날씨에도 300여 명 장사진
20명은 식사 못하고 부식만 받고 돌아가기도
코로나19 여파로 자원봉사자 줄면서 무료급식소도 48곳에서 43곳으로 줄어

1일 오전 10시쯤 대구 중구 교동네거리 인근에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독거노인. 이 가운데 끝줄에 있는 20여 명은 식사 대신 부식을 받았다. 임재환 기자
1일 오전 10시쯤 대구 중구 교동네거리 인근에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독거노인. 이 가운데 끝줄에 있는 20여 명은 식사 대신 부식을 받았다. 임재환 기자

1일 오전 8시 40분쯤 대구 중구 교동 요셉의집. 매주 무료급식이 제공되는 이곳엔 배식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서성이기 시작했다. -6℃로 손이 얼 정도의 날씨에 옷차림은 제각각이었다. 두꺼운 패딩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장갑까지 착용했는가 하면,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손을 비비며 강추위를 버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날 토요일이었지만 신정이어서 무료급식소 상당수가 휴무에 들어갔다. 이 탓에 새해 첫날부터 굶주린 배를 붙잡는 이들이 많았다.

10년째 반월당역에서 노숙을 하는 정모(53) 씨는 "몸을 다쳐 생활비를 구할 형편이 안 된다. 현재로선 무료급식소가 아니라면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 춥지만 따뜻한 한 끼를 위해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2022년이 시작된 첫날, 영하권의 강추위에도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이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코로나19로 무료급식소가 사라졌거나 제공 횟수가 점점 줄면서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뜨기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새해 첫날 무료급식으로 채우는 허기

이날 오전 배식시간이 다가오면서 50여 명이 모여 형성된 대기 줄은 공간이 모자라 인근 도로 앞까지 이어졌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새해 첫날 특식을 기대하며 따뜻한 떡국이 나오는 게 아니냐며 시설 관계자들에게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전 9시 40분쯤 배식이 시작됐다. 1시간가량 기다렸던 사람들은 차례대로 검은색 봉지로 포장된 식사 꾸러미를 받으며 관계자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새해 첫 식사로 떡국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부피가 큰 꾸러미에 대부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1일 오전 대구 중구 교동 요셉의집에서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시설 관계자들에게
1일 오전 대구 중구 교동 요셉의집에서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시설 관계자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새해 첫 식사로 떡국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부피가 큰 꾸러미에 대부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임재환 기자

1989년부터 이곳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는 권 아가다 수녀(61)는 "2022년 첫날이어서 고기반찬과 떡을 준비했고, 라면을 비롯한 부식도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따뜻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평소보다 푸짐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시설 내부에 급식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실내 식사가 안 된다. 이에 사람들은 식사 꾸러미를 가방에 넣고 자리를 급히 떴다. 노숙인들에 따르면 '동대구역팀', '대구역팀', '반월당역팀'으로 나뉘어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분간의 노숙인 배식이 끝나자 자원봉사자들은 교동네거리에서 줄을 지어 서 있는 200여 명의 홀몸노인들을 직접 찾아 가 "배식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이날 식사가 300인분에 맞춰진 탓에 끝줄에 있던 20여 명은 부식으로 만족해야 했다.

부식만 받고 발걸음을 돌린 김모(79) 씨는 "홀몸노인 줄에서 가장 일찍 받으려면 오전 5시에는 줄을 서야 한다. 날씨가 추워 늦게 나오다 보니 오늘은 라면으로 끼니를 떼워야 할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원봉사자 백승협(63) 씨는 "마음 같아선 모두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싶지만, 배식량이 정해져 있어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춥게 기다리다가 부식만 제공하고 보낼 때 온종일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202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6시 40쯤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인근 광장. 노숙인과 독거노인 70여 명이 장사진을 이룬 채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뒤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수성구 범어교회가 도착하자 일제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임재환 기자
202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6시 40쯤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인근 광장. 노숙인과 독거노인 70여 명이 장사진을 이룬 채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뒤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수성구 범어교회가 도착하자 일제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임재환 기자

◆추운 바닥에서 세밑 마지막 식사 "한 그릇 더"

202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6시 40쯤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인근 광장. 70여 명이 장사진을 이룬 채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뒤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수성구 범어교회가 도착하자 일제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메뉴는 국밥. 배식을 받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추운 날씨 탓에 이동할 경우 국밥이 금세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들 몇몇은 5분 만에 식사를 끝낸 후 다시 배식대를 찾아 국밥을 추가로 달라고 말했다. 한 노숙인은 "저녁 식사 후 아침까지 약 12시간 동안 먹을 게 없다. 식사가 가능할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두려 한다"고 말했다.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인을 비롯해 홀몸노인 등에게 제대로 된 식사 한 끼가 소중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무료급식소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2일 대구시에 따르면 코로나 전 2019년 48곳이었던 무료급식소는 현재 43곳으로 줄었다. 이 중 6곳은 감염 우려로 운영이 일시 중지됐다

무료급식소가 줄어든 만큼 각 구군 내 행정복지센터에서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하지만 쪽방촌과 원룸 등 거주공간이 있는 이들에게 국한된다. 신원이 불분명하고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에게까지 배달하기란 어렵다.

대구시 관계자는 "노숙인을 비롯해 결식 우려가 있으신 분들은 지역 내 동사무소에서 '사례관리'를 통해 식사를 받을 수 있다. 시와 구군에서도 대상자를 발굴하는 데 노력하겠지만, 자발적으로도 찾아와 끼니를 거르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