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조- (3)시조의 생명인 종장, 어떻게 마무리할까

입력 2021-11-20 06:30:00

시조의 자수 비중으로 보면 초장과 중장, 종장이 각각 1/3입니다. 그럼에도 유독 종장의 완성도에 따라 시조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종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종장에 자리한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종장의 전달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초장의 전제와 중장의 전개 과정이 평정과 절제의 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은 시조의 종장을 비교하면서 한여름 보리 타작을 하는 도리깨질에 빗대어 한 번 내려 털고 두 번 내려 털고 세 번째는 도리깨를 머리 위로 휘익 돌린 다음, 내려 터는 변화와 율동에 의한 신명이 종장의 멋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어떤 시인은 국제적인 배구 시합에서 상대방의 서브를 리시브하고 토스하고 강하게 내리꽂는 3단계의 과정이 시조와 흡사하다고 말하면서 종장은 강하게 내리꽂는 그 명쾌함이 생명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그 종장의 신명과 통쾌한 장면을 만나보겠습니다.

분단장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 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제일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어머니 생각'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완영 시인의 '호박꽃 바라보며'입니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시조입니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의인화를 하였지만 초장도 호박꽃을 그렸고 중장도 '뙤약볕에' 내몰린 호박꽃을 형상화했습니다.

그런데 종장에서는 꽃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호박을 불러왔습니다. 부제와 겹쳐 생각해보면 '뙤약볕에 타던 꽃'은 어머니이고 그가 남겨주고 간 '이 세상 제일 큰 열매'는 바로 자식인 자신입니다. 꽃을 보면서 그 꽃이 주고 간 열매를 함께 떠올려 우주의 섭리를 읽어낸 것입니다.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산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부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이 작품은 서벌 시인의 '서울·1'입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흔히들 겪음직한 상황입니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하였으니, 외로움과 적막이 만평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중장까지는 시적 화자의 신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종장에 비장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지요. 가지고 온 돈은 다 떨어지고 만나는 친구마다 건네준 주머니의 명함만이 을씨년스러운 타향에서의 공포가 초장에서 말한 '만평 적막'보다 넓고 크고 두렵게 다가옵니다. 신통한 종장의 변용 덕분입니다.

이렇듯 시조의 종장은 앞부분의 전개 과정이 겨냥한 결론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노골적인 메시지가 노출된다거나 의도가 표어처럼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큰 흐름으로는 맥을 같이 하되, 반전과 은유와 상징을 통한 전달이 될 때 감동이 보다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민병도 시인

민병도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