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인터뷰를 받다보면 공연으로 수익이 나긴 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 질문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따뜻한 염려에서 나오는 질문이라 받아들인다면 그다지 불편할 것도 없다. 여튼 결과적으로 말하면 내 경우,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아니오'이다. '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다. 그리고 '네'라고 대답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의 관점에서 말이다.
영화 각본 및 연출로 잘 알려져 있는 장진 감독은 재미있는 희곡(연극의 대본) 또한 여러 편 썼다. 그중 '허탕'이라는 작품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감옥에 갇혀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감옥이라고는 하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쾌적하기 그지 없는 곳. 그곳에 갇힌 한 죄수는 가느다란 쇠톱으로 매일같이 감옥의 철창을 긁어댄다. 간수들이 뻔히 지켜보는 중에 아무런 효용도 없는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질문을 받자, 죄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철창을 자르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고 믿어서 하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갇혀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대학생 시절에 본 작품이지만 그 짧은 장면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남아있을 뿐일까. 연극에 대해서나 나 자신이 하는 행위가 이 세상에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지 회의가 들 때면 다시금 나를 붙잡아주는 이정표요,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서, 한편의 공연에 대해 본전(손익분기점), 이익, 손해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간단하다. 공연을 제작하는 데 투입된 돈, 그리고 그 공연의 관람료 수입이나 기타 부가상품 판매를 통해 회수한 돈. 그 둘 사이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면 된다.
하지만 돈이 아닌 시간의 관점에서 손익을 판단해 보면 어떨까. 즉,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데 참여자들이 투입한 시간의 합과 관객들이 평생을 살아가며 그 작품의 어느 조각들을 떠올리는 시간, 그 둘을 비교하는 방식 말이다.
예를 들어 10명의 예술가가 각각 100시간의 노력을 들여 공연을 만들었다. 100명의 관객이 이 공연을 봤고 그들이 평생을 살아가는 중 이 공연의 무언가를 떠올리는 시간의 합이 각각 10시간이 된다면 이 공연은 본전을 회수한 공연이다.
물론 관객들의 평생을 추적하며 기억을 들여다볼 수 없는 노릇이니 결과의 확인이 불가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경제적 수익 여부를 생각지 않는 철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시간의 기준에서 수익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허투루 공연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형태가 남는 시각작품이나 필름에 기록되는 영상매체와 달리, 시간 속에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는 연극예술. 연극에게는 사람들의 기억이 캔버스고, 필름이다. 관객이 우리에게 더더욱 소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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