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에 재현한 상륙 당시 모습. 빗발치는 적의 포탄속에 좌초된 문산호에서 학도병들이 밧줄에 의지한 채 뭍으로 상륙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1950년 9월 10일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소장이 친필로 쓴 '작전명령 제174호'.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 태풍 케시아의 높은 파도에 장사해안 상륙지점 앞에 좌초된 문산호.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 3일치 식량으로 6일간 버티며 구조를 기다리는 학도병 모형.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6일 간의 사투 끝에 구출함 조치원호에 오르는 학도병을 재현한 모형.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6.25 전쟁이 끝난 뒤 장사리 주민들이 해안에 좌초된 채 방치됀 문산호를 놀이터 삼아 놀고있다. 문산호는 1997년 3월 6일 수중에서 발견한 이후 잊혀진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1960년 10월31일 맥아더 장군이 장사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유격동지회에 보낸 친필 서한.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2019년 6월 25일 문산호 전사자 선원 11명에게 69년만에 수여된 화랑무공훈장증. 한시택, 안수용 2명의 훈장증은 유족을 못 찾아 기념관에 보관중이다. 문산호는 2차 대전 당시 전장을 누비다 퇴역한 탱크 수송함으로, 1950년 당시엔 대한해운공사 소속 선박이었다. 6‧25전쟁으로 해군에 동원돼 작전에 참여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1950년 9월 15일 새벽, 어둠을 뚫고 다다른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동(리) 해안.
통한의 태풍 '케지아'에 문산호는 좌초되고
인민군 포탄이 선장실까지 뚫고 들어왔습니다.
아비규환 속에 상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바다로 뛰어들자 성난 파도가 쓸어갔습니다.
헤엄에 능한 학도병이 겨우 소나무에 붙들어 멘
밧줄에 의지한 채 속속 백사장으로 올랐습니다.
퍼붓는 포탄에 손톱이 닳도록 구덩이를 팠습니다.
파도에, 총탄에 벌써 60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오후 200고지를 점령하고, 포항까지 진출한
인민군 보급로 7번 국도를 틀어막았습니다.
다급해진 인민군이 군단 병력으로 반격해 왔습니다.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로 6일을 버텼습니다.
총도 쏠 줄 모르는 14~17세 772명의 학도병이
탱크를 앞세운 정규군 인민군과 맞짱뜬 장사상륙작전.
139명 전사, 92명 부상. 포로도, 실종도 많았습니다.
훈련은 2주 남짓, 인민군복에 무기는 소련제 장총 한 자루.
이 무모하고 황당한 작전을 왜? 그땐 누구도 몰랐습니다.
"적의 보급로를 차단 하야 1군단 작전을 유리케 하라"
'작전명령 174호'에 부대가 긴급 재편됐습니다.
772명의 유격대대를 사단급으로 위장했습니다.
중대는 연대로 부르고, 중대장은 중·대령 계급으로
부대장 이명흠 대위는 투 스타, 소장 계급장을 달았습니다.
학도병 모두 머리카락·손톱·발톱을 잘라 제출하고
부산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성대한 출정식이 열렸습니다.
장성이 총 출동하고 거리엔 환송 인파도 나왔습니다.
부산항 문산호에 대규모 미군 병력이 타고 내리길 수 차례.
보란듯이 '시위'를 벌이더니 애송이 학도병만 남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이명흠 대장의 화력지원 요청도 물거품.
미군은 비밀리에 이미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장사에서 쓰러지던 그 시각, 맥아더가 인천을 탈환했습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명령 174호'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을 위한 양동작전, 위장전투였습니다.
작전은 성공했고, 몸을 바쳐 나라를 구했지만
학도병은 국립묘지가 아닌 해변 솔숲에 잠들었습니다.
학도병에 대한 전쟁 유공 인정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그들에게 진 빚을 우리는 아직도 갚지 못했습니다.
문산호가 좌초된 그날처럼 태풍(찬투)이 또 북상 중입니다.
2020년 6월5일 문산호 외관을 재현해 촤초 현장에 개관한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에 조성된 학도병들의 상륙작전을 재현한 동상.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기념관 2층에 전시된 772명의 학도병 이름과 군번. 학도병은 군번도 없이 작전에 투입돼 철수한 이후 군번을 부여받았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장사상륙작전 전싱 기념공원에 조성된 전승기념탑.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학도병 772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장사상륙작전에 희생된 학도병이 잠든 공동 무덤. 국립묘지가 아니라 해안 솔숲에 잠들어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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