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신영 씨 할아버지 故 박재오 씨

몸이 쇠약해져 팔을 들 수 없을 때도 꿋꿋이 피아노 연주하셨지요
그 열정 이어받아 국내외에 새로운 퓨전 음악 선보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박재오 씨가 1993년 경남 창녕군 유어면 작업실 앞에서 설날 만난 손자 박신영을 안고 찍은 기념사진. 가족제공.

나의 다정했던 할아버지! 그곳은 따뜻한가요? 많이 보고 싶어요.

2016년 태국 북부 빠이(pai) 바나나 숲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악기 연습을 하는 도중 갑자기 알지 못하는 번호로 걸려온 국제전화 한 통…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덧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무거운 아버지의 목소리 ....아...

어디에 홀리신 것처럼 추운 겨울 날씨에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약 10Km 거리에 있는 큰아버지 사업장을 향해가시던 중이셨죠. 혹한의 추위에 노출된 머리 부위의 미세혈관이 팽창해 출혈로 이어졌다고 들었어요. 자연스레 오토바이와 분리되어 도로 가장자리에 누우신 후 일어나지 못하셔서 병원으로 후송된 지 12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셔서 가족들을 슬픔에 빠지게 하신 할아버지… 그곳에서는 잘 지내시고 계세요? 그립습니다 …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피아노 연주자, 기계 제작 기술자로 웬만한 생활용품은 만들고 고치시던 분입니다. 민간요법을 좋아하셨고, 특히 체증에는 비상한 경험을 가지셔서 '내 몸에 생긴 병 내가 고친다'의 저자셨죠. 어린 시절 장난감이 고장 나면 '할아버지,할아버지' 부터 외쳤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단 한 번도 귀찮은 내색 없이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다정하게 장난감을 고쳐 주셨고, 할아버지께서 겪으셨던 6.25 참전 이야기, 그 시절 국내가 좁다고 느끼며 용감하게 중국에 다녀오셨던 이야기를 통해 저도 어느덧 할아버지의 용기를 이어받아 2011년부터 전 세계를 다니며 자랑스럽게 디저리두 악기와 전자음악을 접목하여 새로운 음악의 장르를 연주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신체의 노화가 진행돼 쇠약해진 몸 상태로 인해 팔을 들어 올리실 수 조차 없을 때도 연주를 하셨죠 그때 직접 팔을 거치할 수 있는 고무벨트 장비를 개발하셔서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착용하고는 꿋꿋이 피아노의 건반을 치시는 할아버지의 열정을 잊을 수 없어요. 고등학교 재학 중 저는 열정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저렇게까지 연주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어쩌면 그 당시 제가 보았던 할아버지의 열정이 저에게 전달되어 지금의 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이 좋은 분이라서 이웃의 요청에는 단 한 번도 거절하시지 못하고 안 써줘도 되는 보증을 서주신 관계로 온 가족이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잘 극복하시고 매년 명절마다 모든 친척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해 주신 것은 "새콤달콤" 과자 하나가 있어도 옆에 친구가 있다면 혼자 먹지 말고 항상 나누어 먹으라는 말 덕분에 저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나누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는 제가 연주하고 있는 원초적인 소리를 내는 호주 민속악기인 디저리두와 역동적인 팝핀댄스를 결합한 '퓨전 프리'라는 팀으로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대중들에게 공유하며 지내고 있어요.

나의 영원한 롤 모델 할아버지!
지금 계시는 곳에서도 할아버지께서 부르고 싶으셨던 노래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계시겠죠? 세월이 흘러 저 역시 할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갈 텐데, 그때 우리 함께 즐거운 연주해요... 그립고 생전에 많이 연락 못 드린 점 죄송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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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