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언론중재법이란 이름의 ‘퇴임 후 문재인 보호법’

입력 2021-08-31 06:00:00 수정 2021-08-31 06:04:51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볼셰비키는 인민을 위한 사회를 건설한다며 '차르'(러시아 황제) 전제정(專制政)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1917년 10월 혁명 후 그들이 걸어간 길은 차르 전제정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폭압적인 사회주의 독재였다. 공안 기관은 비대해졌고 감옥은 정치범으로 넘쳐났다. 차르 전제정의 비밀경찰 '오흐나라'의 상근 직원은 가장 많았을 때 1만5천 명이었다. 혁명 후 설립된 비밀경찰 체카(Cheka·전 러시아 반혁명 및 사보타주 분쇄 비상위원회)는 설립 3년도 안 돼 상근 정보원이 25만 명에 달했다. 차르 전제정은 말기에 모든 범죄를 합해 한 해 평균 17명을 처형했다. 1918~1919년 체카는 정치범만 한 달에 1천 명을 처형했다.

이런 사실(史實)을 소환한 이유는 볼셰비키와 문재인 정권이 똑같은 배신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을 위한다고 한 볼셰비키가 인민을 억압했듯이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자들이 민주주의에 수의(壽衣)를 씌우려 한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입법 폭주는 그 절정이다. 이 법은 입법 완료까지 국회 본회의 처리만 남겨놓고 있다. 문 정권은 '가짜 뉴스로 인한 국민 피해 방지'를 그 이유로 내세운다. 거짓말이다. 가짜 뉴스의 진원지인 '1인 미디어'와 유튜브, SNS는 법안의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이는 무엇을 뜻하나? 언론중재법의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년 대선 이후 뒤따를 문 정권의 비리 의혹에 대한 언론의 추적 보도 차단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아니라고 펄쩍 뛴다. 하지만 법안은 그렇다고 말한다.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지만 전직 고위공직자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언론 단체들은 성역 없는 비리 의혹 보도를 위해서는 전직 대통령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여당은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년 대선 후 문 대통령은 민간인이 된다. 그 수하(手下)의 상당수도 그럴 것이다. 이들 '전직 고위공직자'는 재임 중의 비리나 범죄 의혹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틀어막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언론 자유는 자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다. 언론중재법은 언론 자유의 제약을 넘어 말살을 지향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파괴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국내 언론계·학계·법조계는 물론 세계 주요 언론 단체들이 하나같이 반대하는 이유다.

민주당의 대응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이다. 그 대표는 "뭣도 모르면서"라는 사실상의 욕지거리까지 뱉어냈다. 그 인성의 천박함을 알 만하다. 문 대통령은 아예 입을 닫았다. 무언(無言)의 동의로 읽힌다. 그래 놓고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한다. 여당이 민주주의의 기둥을 뽑으려 하는데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오는지 그 뻔뻔함이 놀랍다.

이런 현실은 우리 민주주의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묻게 한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8년 제시한 '민주주의 후퇴 4단계'를 적용하면 "권력이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거나 선거법의 개정을 통해 국민이 권좌에서 몰아내기 어렵게 만드는" 마지막이자 네 번째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은 "더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국가로 전락"이다.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면 내년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