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작열감 때문에 경남 합천의 어느 시골에서 진료를 받으러 오는 아주머니 환자가 있다. 대구에 있는 경북대치과병원까지 오려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하루에 십여 차례 대구행 버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작 하루 네 번만 운행하기 때문에 우리 병원까지 오려면 새벽에 집을 나서도 오전 진료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결국 병원 진료에 하루가 꼬박 걸리는 셈이다. 남편의 몸이 불편해서 혼자 힘으로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환자를 대할 때면 늘 마음이 짠하다.
시골에 산다는 이유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불편함과 불이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농촌 인구는 자꾸 줄고 있으며 이제는 농촌에서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지방소멸위험지수' 조사를 통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을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했으며, 국립산림과학원은 우리나라의 466개 읍·면 중 96.8%에 해당하는 451곳이 30년 안에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수도권 인구는 자꾸 늘어나서 수도권 인구비중이 2019년 12월에 전체 인구의 50%를 돌파했다. 수도권의 인구가 지방 인구보다 더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예이다. 그동안 정권마다 수도권 인구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각종 인구분산정책을 펴왔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오죽하면 행정안전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 이달 11일부터 한 달 동안 '지방소멸 대응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실시한다고 하겠는가.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한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교통혼잡, 지가 및 주택가격의 앙등, 환경오염, 도시서비스 비용 등 사회비용의 증가, 지역불균형의 심화,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지역·주민간 위화감 초래, 국가 통합성 저해와 같은 문제점들은 이미 많이 거론된 것들이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집중이 바로 저출산과 인구절벽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간과돼 왔다.
2020년도 2분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서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인데, 특히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4명에 불과해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이에 반해 경상북도의 합계출산율은 1.089로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이렇게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인구 과밀에 따른 치열한 생존경쟁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인구학자인 맬서스는 '경쟁이 심한 곳에서는 본인의 생존 자체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출산율이 높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진화론자인 다윈 역시 물리적인 밀도가 한 생명체가 생존을 택하는지, 아니면 재생산을 택하는지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결국 하루하루 닥쳐오는 인구절벽의 주범은 서울의 극심한 저출산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배경에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내재돼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에 의해서 지방의 소멸이 일어나고, 수도권의 과밀화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후보들이 제 나름대로 자신이 대권의 적격자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 후보 중에서 누가 수도권 인구집중을 억제하고 대한민국을 인구절벽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 볼 일이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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