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발달장애인 거주 자유? "하루만 같이 살아봐라"

입력 2021-08-15 17:57:56 수정 2021-10-08 00:03:24

탈시설 정책, 절차·실현 가능성·부작용 고려않고 졸속 추진
부모들 주위 민원에 시달려 수없이 이사·극단적 선택도
무조건적 탈시설 인권침해…보호자 감당 못할 부담 안겨
3만여명 시설 종사자들의 실업은 또 어떻게 하나

지난 4월 6일 대구시청 앞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탈시설과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난 4월 6일 대구시청 앞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탈시설과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매일신문DB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골자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임대 주택에 거주하며 시설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신만의 삶을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생활을 돕기 위해 현재 시설의 복지사 대신 코디네이터가 배치되며 신규 시설을 더 이상 허가하지 않고,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문 닫게 하면서 10년 내 장애인 시설을 폐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이하 중증장애인부모회)는 해당 정책이 절차적인 부문과 실현 가능성, 그리고 부작용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 추진"

올해 4월 통계청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263만3천여 명으로 이중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는 2만9천700여 명(1.1%)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80%에 이르는 2만3천700여 명이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으로 이번 추진에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 중증장애인부모회의 주장이다.

부모회는 탈시설 관련 법률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을 갖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탈시설 정책의 실질적 주체인 장애당사자 및 보호자 등과의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추진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위원회의 구성이나 초기 상담 및 정보 제공, 탈시설 대상자 선정, 개인별 탈시설지원계획의 수립 등에 있어서도 장애당사자와 부모, 관련 전문가 등을 배제해 법안에서 강조한 장애인의 권리 및 자기결정권을 결국 제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국민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거주의 자유와 자기결정권 보장에 있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로만 국한시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한 중증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는 "현재 탈시설 운동을 펼치는 단체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장애인이다. 그 분들은 시설이 필요하지도 않고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다"면서 "하지만 시설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에게는 무조건적인 탈시설 요구는 명백한 폭력이며 인권침해이다"고 주장했다.

◆"선행 과제 고려없이 현실성 떨어져"

중증발달□장애인 부모들은 탈시설을 위한 선행과제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식 개선이나 중증발달장애인의 상황과 특성 등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부모들은 "수많은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주위에서 쏟아지는 민원으로 이사를 수없이 다녀야만 하는 등 부모가 자녀를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발 탈 시설을 논하기 앞서 중증 발달장애인과 하루만이라도 살아보라"고 절규했다.

또한 장애인의 특성 및 욕구 등을 고려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탈시설을 진행할 경우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약 3만 명에게 공공임대주택을 법안에서 제시한 기한에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공공임대주택 제공 시 중증 장애인들의 다양한 특성과 욕구 등을 고려한 주택의 환경적 구성에 대한 논의도 전무하다고 했다.

이병훈 신부
이병훈 신부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 중중장애인부모회를 돕고 있는 이병훈 신부는 "탈시설의 좋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설이 곧 악(惡)으로 동일시하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시설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거나 입소를 원하는 장애인들을 억지로 밖으로 내몰아 가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지우지는 말아야 한다"며 "특히 10년 내 시설 폐쇄가 현실화된다면 현재 복지시설 3만여 명의 종사자는 한순간에 실업자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