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나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이라는 가사의 노래도 심심찮게 불렀다. 무더위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꽃인 무궁화가 지금 한창 청아하게 핀다.
◆자강불식하는 군자의 꽃
무궁화는 성격이 느긋하여 4월 중순에 새잎을 내놓고 다른 나무들의 화려한 꽃 잔치가 끝날 무렵인 6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가지 위쪽 잎겨드랑이에 꽃을 피운다. 아욱과의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꽃잎을 돌돌 말아 닫고 지는 특성 때문에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문일평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한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 준다"고 예찬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저술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구품」에는 무궁화가 가장 아래 등급인 9품에 들어 있다. 조선의 선비 유박은 「화목구등품제」에서 무궁화[목근·木槿]를 8등에 넣고 이르기를 "단군께서 나라를 여실 때 무궁화 꽃이 처음 나왔다. 그래서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을 때는 반드시 근역(槿域)이라 하였다. 흰 꽃이 대단히 아름답다. 『시경』에 '얼굴이 순화(蕣華)와 같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꽃이다. 속명으로 무궁화(無藭花)라 한다"고 평했다.
무궁화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민족의 얼과 일편단심 충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언제부터 국화(國花)로 자리를 잡았을까

◆한반도는 근화향(槿花鄕)
중국에서는 옛날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라고 칭송했다.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라고 기록돼 있다.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며, 훈화초(薰華草)는 무궁화의 다른 이름이다.
또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치원에게 시켜서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근화향(槿花鄕)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고 한 것이 있다. 이런 기록은 신라시대에 이미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방증해주고 있다.

◆이규보 무궁화 이름 처음 사용
중국에서는 무궁화를 목근화(木槿花), 근화(槿花), 훈화초, 순화 등으로 불렀다. 이 중에 목근화가 변해서 무궁화가 됐다는 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무궁화'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차운문장로박환고 논근화 병서」(次韻文長老朴還古 論槿花 幷序)다. 친구인 문장로와 박환고가 무궁화를 일컬어 한 사람은 '무궁'(無窮)이 옳다 하고 또 한 사람은 '무궁'(無宮)이 옳다고 논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이규보는 "……이 꽃은 피기 시작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피고 지는데/ 사람들은 뜬세상을 싫어하고/ 뒤떨어진 걸 참지 못하네/ 도리어 무궁이라는 이름으로/ 무궁(無窮)하기를 바란 것 일세"라고 했다.
무궁화는 근화 외에도 조화(朝花), 번리화(藩籬花)로 부르다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나라꽃으로 본격 활용되기 시작했다. 1892년 주조된 닷냥[오량·五兩] 은화에 무궁화 문양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5년 제작된 육군 복장에도 무궁화를 형상화한 문양을 사용했고 훈장과 훈장증서에도 무궁화 문양을 넣었다. 무궁화 문양이 전면적으로 사용된 것은 서구식 문관 대례복으로 벼슬에 따라 문양의 크기와 수가 달랐다.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에서 부른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주목받게 됐다.
◆배달민족의 상징 꽃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모곡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쓰는 한편 무궁화 묘포를 만들고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친 남궁억 선생이 있는 반면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생각한 일제가 무궁화의 뿌리를 뽑고 못 살게 한 어두운 역사도 있다. 특히 일제는 '무궁화 꽃가루가 사람 눈에 들어가면 눈을 멀게 한다'와 같은 헛소문, 요즘 말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려 혐오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게 다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은 1921년 9월 잡지 『개벽』에 「무궁화 심으과저」라는 옥중시를 발표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녯 나라에 비춘 달아
쇠창을 넘어 와서/ 나의 마음 비춘 달아
계수나무 버혀(베어) 내고/ 무궁화를 심으과저(심고저)'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내고 독립 국가를 만들겠다는 염원을 달에 있는 계수나무 베어 내고 무궁화를 심겠다고 표현했다.
해방 후 1948년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뒤 이듬해 대통령 휘장과 행정, 입법, 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했다. 1950년에는 태극기 깃봉을 무궁화 꽃봉오리 모양으로 만들게 했다. 무궁화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주도하거나 이끌어 나라꽃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국난을 함께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겨레꽃, 나라꽃으로 국민들이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명시한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무궁화 종류
무궁화는 조경수로도 많이 육종돼 종류가 수백 가지에 달한다. 먼저 품종을 꽃 색깔로 구분하면 순백색(純白色)의 꽃과 순백색 이외의 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순백색 이외의 무궁화는 꽃 중심에 붉은색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단심(丹心)이라고 한다. 색깔별로 크게 계통을 나누면 순백색의 배달계, 단심을 가지고 있는 단심계, 단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붉은색 띠무늬를 가지고 있는 아사달계 등 세 종류가 있다. 단심계는 꽃 색깔에 따라 구체적으로 구분하는데 흰색 바탕에 단심이 든 백단심(白丹心)계, 분홍과 붉은색 바탕에 단심이 든 홍단심(紅丹心)계, 보라색이나 청색 바탕에 단심이 든 청단심(靑丹心)계로 나눈다. 대구수목원에는 홍단심계를 더 세분한 적단심계와 자단심계의 무궁화도 있다. 또 꽃잎의 수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으로 나뉜다. 가령 꽃잎이 흰 백단심계 품종에 홑꽃인 '일편단심' 반겹꽃인 '한얼' 겹꽃인 '설악' 등이 있다.

◆예안향교 안동(애기)무궁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는 특유의 재래종 무궁화가 있다. 보통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일반 무궁화와 달리 한 번 꽃이 피면 36시간 동안 피어 있어 밤에도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다. 경북 안동 예안향교에서 1919년 유림과 선각자들이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뒤 애국의 징표로 심었다고 전해진다. 예안향교 뜰에 자라던 무궁화를 1992년 임경빈 서울대 교수 등이 학계에 새로운 품종(학명 Hibiscus syriacus var. micranthus Y.N.Lee & K.B.Yim)으로 보고했다.
꽃이 500원 동전보다 조금 큰 3~5cm 정도라서 앙증맞고 꽃잎이 흰색으로 단심과 잘 어울려 있으며 꽃잎과 꽃잎 사이가 벌어져 있다. 백단심계 꽃으로 꽃받침과 꽃은 단심이 크고 선명하며 꽃이 피기 전에 암술머리가 먼저 꽃봉오리 위로 봉긋이 솟아있는 것도 이 꽃의 특색이다. 꽃 크기가 작다는 뜻에서 별칭을 '애기무궁화'로 지었으나 나중에 새 품종이 나오면서 한국무궁화연구회 품종명명위원회에서 '안동무궁화'로 명명했다.
예안향교 안동무궁화는 2004년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됐다가 2010년에 고사했다. 예안향교 전교를 지낸 박원갑 씨는 "당시 이기용 씨와 함께 시들어가던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50개를 꺾꽂이했고, 살아난 대부분을 분양하고 두 그루를 원래 안동(애기)무궁화가 있던 예안향교 명륜당 앞뜰에 심었다"고 말했다. 현재 예안향교에 자라고 있는 재래종 무궁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두 그루는 선현들의 애국심이 깃든 나무라서 그런지 예쁜 꽃이 더 눈길을 끈다. 육종학자인 심경구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안동무궁화를 '릴 킴'(Lil Kim·안동Ⅱ) 등의 품종으로 개량해 미국과 캐나다에 특허 출원하고 로열티를 받고 있다.

◆눈길 끄는 구미 독동리 무궁화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바람에 농촌에 마을길이 정비되자 길가에 관상수나 울타리로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마을 길가에 노문식(92) 어르신의 집 담 옆에 무궁화나무로서는 성목(成木) 축에 드는 한 그루가 풍성한 꽃을 피워 장관이다. 밑동 둘레가 72cm정도 되는 소교목인 형태로 키는 3m 남짓이다. 지난해 공직에서 정년퇴직한 이 댁 맏아들이 중학생 때 심었다고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심은 지는 45년 정도 되는데 씨앗을 심지 않고 묘목을 심었다고 하니 수령이 약 50년에 달하지 않겠나 추정된다. 무궁화는 보통 수명이 40~50년이고, 수령이 100년 넘으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실정이고 보면 무궁화 집안에서 장수하는 셈이다. 가족들은 "나무가 크고 꽃이 예쁘다 보니 여기저기서 나무를 탐낸다"고 자랑했다.
우리 겨레는 무궁화 첫 꽃이 피고 100일이 지나면 첫서리가 온다고 믿었을 만큼 오랜 역사에서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매일 꽃을 피우는데 보통 1년에 한 그루에서 2천~3천여 송이가 여름을 작작(灼灼) 장식한다.
8월 광복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만 국치일은 대부분 잊힌 역사로 여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8월 29일'을 앞두고 나라꽃 무궁화에 대해 톺아봤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잡어든 오늘날 민족의 개념은 희미해가지만 대한민국의 상징인 '무궁화'를 마음에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부장 chungh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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