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의 붉은 봄 / 서명수 지음 / 서고 펴냄
"중국공산당 전 국가주석이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한 장 동지가 신병치료를 위해 베이징 301 인민해방군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2022년 7월 5일 오전 6시 서거하셨습니다…"
장 동지의 서거 소식은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 메인뉴스에 뜬 긴급속보였다. 9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이는 장쩌민이었다. 2021년 8월의 눈으로 써내려간 '충칭의 붉은 봄'은 예언같은 픽션으로 500쪽에 가까운 다큐소설을 시작한다.
25년 기자 생활로 호쾌한 필력을 자랑하는 서명수 작가는 '다큐소설'이라는 낯선 장르로 사실과 역사와 상상의 영역을 넘나든다.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산시 석탄국수', '후난 마오로드', '제국의 초상 닝샤' 등 앞서 중국 전역을 돌며 만난 중국 인민들의 모습과 문화를 담아낸 기행문들과 결이 다르다.
팩트 체크를 신봉하는 기자의, 칼럼니스트의 습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2012년 중국을 뒤흔든 '보시라이 사건'의 내막과 향후 파장을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 예측한다.
시진핑 주석 체제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진입이 유력시되던 보시라이였다. 마오쩌둥의 홍위병으로 적극 나서 혁명원로인 자신의 아버지 보이보를 내치는 패륜적 선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보시라이. 그는 하루아침에 반혁명 주역이자 부패한 지도자로 몰락한다. 황제의 꿈을 품고 권력을 향해 순항하는 듯했던 보시라이의 권력투쟁기는 끝을 맺는 것일까.

보시라이가 옥에 갇힌 지 10년째인 2021년. 작가는 시계를 뒤로 돌려 상하이방과 태자당, 공청단의 물고 물리는 권력암투를 담담하게 전한다. 삼국지 뺨치는 배신과 술수, 그리고 합종연횡은 드라마로 제작돼도 무리가 없을 만큼 긴박하게 진행된다. 막장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겹사돈'까지 등장하진 않지만 축첩, 간통 등 범법행위는 차고 넘친다.
작가는 "신중국을 이끄는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지도자들의 정치 생명을 건 치열한 각축전과 정파 간의 얽히고설킨 구도를 시중에 전해지는 소문들과 공식적인 발표들을 모아 정교하게 조합했다"고 밝혔다.
2012년 보시라이 사건의 발단이 된 왕리쥔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영사관 망명 사건과 그 배후, 보시라이와 상하이방의 쿠데타 모의, 영국인 사업가 헤이우드 살해 사건의 전모와 빗나간 애증의 드라마도 소설에서 상세히 그려진다.

보시라이의 최측근으로 충칭시의 창홍따헤이(唱红打黑) 캠페인(공산당을 찬양하고 범죄를 때려잡자)을 진두지휘해 온 공안국장 왕리쥔은 느닷없이 미국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한다. 왕 국장은 충칭의 '인민영웅'이자 현대판 '포청천'으로 추앙받기도 했던 이다. 그런 그가 보시라이 일가의 비리와 축재 관련 자료, 쿠데타 계획, 그리고 충칭에서 발생한 영국인 사업가 헤이우드 사망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들고서였다.
왕 국장에게서 나온 자료는 전 중국을 충격에 빠뜨린다. 무엇보다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주도한 헤이우드 사망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타살로 강하게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전국인민대회와 정치협상회의 등 '양회(两会)' 개최를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
특히 후계 구도가 확정돼 10월 당 대회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고 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키기 위한 정파간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였다. 이 사건으로 정치국 상무위 진입이 확실시되던 보시라이는 당적까지 박탈당하는 등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는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사법처리돼 재판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사실에 근거한 진행이다. 그러나 '다큐소설'이라 저자가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의 근본은 한 편의 정치멜로드라마다. 사실인 것 같으면서도 상상이 개입된 작품이란 뜻이다. 중국 현대정치 기록물이나 연구서가 아니다. 흡사 소설같이 펼쳐진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에게는 극도로 민감한 정치사안이었다.

작가는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둘러싸고 전개된 권력투쟁의 이면을 집중적으로 추적한 결과라고 강조한다. 그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민,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삶은 달라졌다. 원바오(温饱, 기초 의식주가 해결된 생활)를 넘어 이제는 샤오캉(小康, 여유로운 중산층 사회)을 추구한다. 그러나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라오바이싱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며 "권력투쟁의 민낯을 통해 신중국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중국은 다시 시진핑 일인 장기집권이자 독재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과정을 담담하게 추적했다"고 밝혔다.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로 일했던 작가는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에서 공부해 중국과 관련한 여러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소설 '충칭의 붉은 봄'은 두 가지 버전으로 출간됐다. 붉은 충칭을 상징하는 붉은 표지와 복잡한 사건을 상징하는 어두운 표지의 두 가지다. 480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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