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장거리 노선, 지쳐가는 시내버스 기사들

입력 2021-08-03 17:56:28 수정 2021-08-03 21:51:00

대구 내 장대노선 32개 중 절반 운행거리 늘어
택지개발로 외곽지역 운행 확대…"회차지까지 2시간 넘게 운전"
"화장실 안 가려 물도 안 마셔"…'휴식 10분' 피로풀기엔 역부족

600번 시내버스 운전기사 이임락 씨가 버스 운행 시 휴대하는
600번 시내버스 운전기사 이임락 씨가 버스 운행 시 휴대하는 '물병'과 '졸음 방지용 껌'. 최혁규 기자

이임락(56) 씨가 운전하는 대구의 600번 시내버스는 달성2차산업단지에서 출발해 앞산 공원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노선이다. 대구에서 가장 긴 노선으로 전체 왕복 운행거리가 108㎞에 이른다.

이 씨는 평소 물병이 든 작은 가방을 곁에 두지만, 기점에서 회차지까지 2시간여 동안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긴 시간 운행 중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다. 이 씨는 "버스기사를 한 후 배변이 어려워 고질병이 생겼다. 약을 챙겨먹는다"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대부분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시가지가 도시 외곽으로 확대되면서 시내버스 노선도 길어져 운전기사들의 업무도 과중되고 있다.

3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시내버스 장대노선은 32개가 있다. 2017년 말 30개에서 급행 2번과 425번 2개가 더 늘었다. 장대노선은 운행 거리가 60㎞ 이상이거나 운행 시간이 240분 이상인 장거리 노선이다.

기존 장대노선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최근 2년 사이에 더 길어졌다. 30개 노선 중 거리가 줄어든 노선은 4개에 불과하다. 특히 503번과 655번은 각각 운행 거리가 각각 10㎞, 12.2㎞나 더 길어졌다. 택지개발로 대구 곳곳에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선 탓이다.

503번을 운행하는 한 기사는 "계명대, 경북대, 동성로 등을 지나는 노선이라 출퇴근 시간에는 많이 막히는데 북구 연경동으로 종점이 연장되면서 편도에만 3시간이 걸릴 때가 많다"며 "화장실을 찾을 수 없고 연경동에 가더라도 겨우 10분 정도 휴게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노선 연장으로 짧은 휴게시간도 문제지만 쉴 공간도 부족하다. 대구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대구의 회차지 72곳 중 식사를 할 수 있는 컨테이너 시설은 20곳 뿐이다. 도로에서 노상으로 회차하는 곳이 40곳이나 된다.

600번 노선을 운행하는 이 씨의 경우 회차지인 앞산공원에서 20분 안에 점심을 먹어야 한다. 회차지 내 식당은 최근 무더위에 에어컨을 틀지만 실내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불을 이용하는 조리시설이 식당 좌석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매년 최대한 예산을 확보해 회차지 내 교체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40개에 달하는 노상 회차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이나 지구단위계획시설로 묶여 있어서 허가와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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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공원 회차지 내에 있는 컨테이너. 대구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관리하는 이 곳에서 시내버스 기사들은 식사를 하고 야외 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 최혁규 기자
앞산공원 회차지 내에 있는 컨테이너. 대구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관리하는 이 곳에서 시내버스 기사들은 식사를 하고 야외 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 최혁규 기자

204번 노선 회차지점에 있는 화장실.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시내버스 기사들은 이곳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시버스노동조합 제공
204번 노선 회차지점에 있는 화장실.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시내버스 기사들은 이곳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시버스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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