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도쿄 올림픽으로 보는 반일(反日) 감정

입력 2021-08-03 06:03:54 수정 2021-08-03 17:30:56

31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일본의 경기. 세트스코어 3대 2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일본의 경기. 세트스코어 3대 2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한국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 한-일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8강에 진출했다. 세트 스코어 2대 2, 마지막 5세트에서 12대 14로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연속 득점으로 16대 14로 이겼다.

한국의 승리와 일본의 패배를 전하는 한일 양국의 뉴스에 다수의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은 기백이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 2점 차 리드를 지킬 수 없는 게 지금의 실력. 이긴 한국을 칭찬해야 한다"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우리나라 네티즌들 다수는 "선수들 정말 멋졌고 수고 많았다. 멋지게 싸워 줘서 감사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파이팅, 고맙다"는 댓글을 달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축구든 배구든 한-일전이 열리면 "다른 나라에 다 져도 괜찮다, 일본한테만 이기면 된다. 쪽바리한테 지면 다른 승리는 무의미하다. 일본한테 지면 돌아오지 마라" 등 찌질한 반응이 많았다. 이번에도 "일본한테 이긴 걸로 게임 끝이다"는 댓글이 있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그만큼 우리가 성장한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일본은 그냥 이웃 나라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과 타인을 반일(反日), 극일(克日), 친일(親日)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반일 정서가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일본에 적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괜찮지만, 일본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면 '친일파' '토착 왜구'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극일 입장인 사람들은 대체로 '일제 강점'의 원인을 '국가 부(富)와 무력의 차이'에서 찾는다. 반일 입장인 사람들은 '일제 강점'을 대체로 '선악과 양심'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극일 입장의 사람들은 '국가 역량' 키우기에 주목하고, 반일 입장의 사람들은 '일본 비난과 친일파 및 일제 잔재 청산'에 집중한다. '반일 주장'만으로 스스로를 애국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19세기, 조선과 일본은 모두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다.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미국의 강요에 불평등 조약(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일본에서는 '반미'보다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대규모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해 선진 문물을 배우고, 새로운 일본 건설에 나섰다. 1866년 프랑스 함대, 1871년 미국 군함이 강화도에 쳐들어와 압도적 화력을 퍼부었을 때, 조선은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라고 했다. 새롭게 일어선 일본은 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기어코 개정했고, 반외세를 외쳤던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서양 군대의 압도적 무력 앞에서 조선 지도자들은 "그래 봐야 오랑캐"라며 '정신 승리'했다. 그런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는 국가에서 "서양 총포의 위력이 대단하니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는 '매국노'로 간주될 뿐이었다. 지난해 정의기억연대의 횡령배임 의혹을 모두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반일 정치인들은 "친일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나라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했다. '부패 척결' 요구를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한 것이다. 흥선 대원군의 '척화비'나 정부·여당의 '반일 선동'은 나라를 망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1960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을 6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교역 규모 9위, 수출 7위의 선진국으로 만든 것은 반일의 '죽창가'가 아니라 극일의 '협력'과 '학습'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상대방의 선량과 양심에 호소하거나 우리 안의 절개에 기대어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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