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최근 가짜 뉴스 피해 구제를 빌미로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심지어 악의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규정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독단으로 통과시켰다. 야당 의원들이 개정안 내용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해 반대하는 가운데 강행 처리한 것이다.
여당은 나아가 이달 안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어 이 개정안을 무조건 의결하겠다고 강행 방침을 밝혔다. 여당의 개정안 밀어붙이기에 조급함이 묻어난다.
여당이 개정안을 서둘러 처리하려는 이면에는 여러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여야 간 상임위원장 재배분 협상 타결에 따라 당장 이달 25일 법제사법위원장과 문체위원장이 야당인 국민의힘으로 넘어간다. 야당 문체위원장 아래에서는 강행 처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언론 단체와 야당의 반대에도 개정안을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또 야당에 대한 법사위원장 양보로 궁지에 몰린 여당 지도부가 강성인 당내 미디어혁신특위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법사위 후폭풍'을 잠재우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점쳐진다.
더욱이 정권 말 차기 대선을 앞두고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개혁'이라는 명분을 무색게 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차치하고라도 이 개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언론 자유와 알권리 제약을 넘어 악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개정안은 언론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 조작 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서 고의 또는 중과실 여부의 입증 책임을 피해를 입었다는 기관이나 당사자가 아닌 언론사에 떠넘기고 있다. 현행 민법 체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규정이다.
고의 또는 중과실이란 표현 자체도 모호할뿐더러 범위도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내용이 가볍고, 어떤 내용이 무거운 과실에 의한 허위 보도인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법원이 허위·조작, 고의·중과실이란 모호한 기준만으로 피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구체성이 전혀 없는 급조한 문구로 언론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허위·조작 보도의 폐해를 막겠다면서 피해액만큼이 아닌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한 데다 손해배상 액수의 상·하한선을 해당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손해배상액 상·하한을 피해 정도와 범위(손해액)가 아닌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정해 놓았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언론 자유와 알권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개인의 명예나 기본권을 해치면서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허위·조작 보도는 근절돼야 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데는 백번 동의한다. 하지만 현행법 체계에서도 민·형사상으로 손해배상과 명예훼손죄 등으로 충분히 악의적 보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악의적인 가짜 뉴스나 언론사를 뿌리 뽑겠다고 어설프고 급조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다면 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이 옛말이 아닐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