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지요. 삶은 일상입니다.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말들 가령, 밥 먹자. 학교 가야지. 차 한 잔 하자. 애인 생겼어. 눈이 내린다 등등… 우리는 가끔 이러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있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문득 어릴 적 외웠던 시구 한 줄 조용히 읊을 때 있지요. 시를 통해 잠시나마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거지요. 스쳐지나간 사람과 나무와 꽃과 새들과 순간순간 주고받은 무언의 말들 떠올려보는 거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인이 된 기분 들잖아요. 여기서 시란 그저 일상 체험 속에서 우려낸 언어의 건축물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잠시 두 사람 대화를 통해 일상어와 시어의 차이를 가볍게 짚어볼까요. 눈 내리는 어느 날, A가 '눈이 내린다. 길 위로 사람이 지나간다'라고 말하자, 곁에 있던 B는 '눈 내리는 길 위로 눈사람이 지나가네'라고 그랬어요. 이 말을 들은 주위 친구들은 B에게 '야, 너, 시인 같다'라고 말했겠지요. 언뜻 들어봐도 A의 말은 단순 의사소통 내지 정보전달만의 일상적 말투로 들려요. 그러나 B가 말하는 '눈사람'은 눈을 모아서 만든 눈사람이 아니라, 눈 맞고 지나가는 사람을 일컫는 의미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눈이 내린다'는 사실적 정황 설명을 넘어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들게 해주는 감동적 시어로 와 닿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A와 같은 사고방식에 젖어있어요. B와 같은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근원적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습성 즉, 직관적 통찰력을 길러야겠어요. 아울러 좋은 시를 틈틈이 읽고, 일상 속에서 가끔 번뜩이고 지나가는 자신의 생각을 그때그때 메모하는 습관도 시 쓰기에 큰 보탬이 되지요. 그러다 보면 문학적 상상력도 풍부해지고요. 이런 영감 받아 적은 B의 시 한 편 음미해볼까요.
눈이 없네 /눈이 있네 /꼬마아이랑 아옹다옹하며 /눈 구경 나온 엄마가 /눈 위에다 /눈, 이라 쓰네 /맞은 편 서있는 꼬마아이가 /곡, 하고 읽네 /엄마와 꼬마아이 사이 /눈싸움 벌어졌네 /그 사이 /거꾸로 보는 눈 송이송이 /흰소리 치며 달려와 /푹 패인 곡 덮어버리네 /눈이 /눈을 속였네 /눈 맞은 /눈사람 둘 엉겨 붙어있네 ('눈사람' 전문)
이처럼 시란 일상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이 시인의 눈 속에 꽂혀 시어로 버무려진 거지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이나 생각들을 시인은 관찰하고 상상하며, 이를 받아 적었어요.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그 성징을 폭넓게 인식해볼 수 있어요. 눈(사물)을 보는 엄마와 꼬마아이의 관점이 확연히 달라요. 엄마가 쓴 '눈'을 아이가 '곡'으로 읽는 순간, 이 세상엔 절대적인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들지요. 눈을 보고 눈싸움을 하면서도 눈사람이 되는 순간, 둘은 하나로 엉겨 붙는…,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상대적 삶의 태도를 자연스레 배우는 거지요. 이게 시의 매력이지요.

김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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