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영천 기부 천사' 유석권 영천시새마을회장

입력 2021-07-22 17:07:49 수정 2021-07-22 19:38:11

20년째 쌀 기부·장학금 전달·봉사…작은 사무실 법무사의 큰 이웃 사랑
학창시절 가난의 아픔 지독하게 겪어…청소년 위해 무료 기숙사 운영경험도
2019년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상' 수상

영천 지역사회에 20년째 매년 거액을 기부해온 유석권 법무사는 새마을회 회장, 자원봉사센터 이사회 이사장 등 다양한 단체에서도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영천 지역사회에 20년째 매년 거액을 기부해온 유석권 법무사는 새마을회 회장, 자원봉사센터 이사회 이사장 등 다양한 단체에서도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가문인 경주 최씨 집안에는 6개 항목의 가훈(家訓)이 내려온다. 하나 하나가 가슴을 울리지만 그 가운데 다섯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재난이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듯 팬데믹은 취약계층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K형 회복'을 방증하는 통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경북 영천시에는 최 부잣집의 애휼(愛恤) 정신을 20년째 실천해온 '기부 천사'가 산다. 법원 등기관(登記官)으로 퇴직한 뒤 2002년 고향에 법무사 사무소를 연 유석권(65) 영천시 새마을회 회장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이웃 사랑에 힘써 온 그는 지역사회에선 봉사의 아이콘이다.

유 회장은 최근 백미 10kg 1천 포(약 3천200만원 상당)를 기탁하는 등 구호품, 장학금으로 매년 수천만~수억원을 전달해왔다. 인구 10만명 도시에서 조그마한 사무실을 운영하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한 터라 가족들도 한마음으로 응원한다.

"형편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선친께서 주위 사람들 보증을 잘못 선 탓에 가난의 아픔을 지독하게 겪었습니다. 저를 위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던 형님을 보면서 후배들은 이런 일을 절대로 겪지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사무실을 열면서 기부 통장을 따로 만들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10여 년 전 청소년들을 위해 통학용 자전거 수백 대를 기탁하는 한편 무료 기숙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영천 시내 아파트 몇 채를 구입해 소년소녀 가장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 때문에 그의 아이디어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급하게 처분하면서 손해를 많이 봤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하지만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많이 베푼 집에는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장기간 입원할 정도의 큰 교통사고를 3차례나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의료진이 평생 등산도 하지말라고 당부할 만큼 온몸이 성치 않았던 그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두고 그의 지인들은 선행(善行) 덕분이라고 치켜세운다.

20년 동안 휴가는 딱 하루 써봤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유 회장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바둑이다. 일어나자마자 귤중지락(橘中之樂)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하고, 아침 일찍 사무실로 향한다.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 봐 출근시간에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 동네 산책을 나가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개업할 당시 스스로 두 사람 몫을 일하는 대신 한 명의 월급을 사회에 환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직원들의 고생이 뒷받침됐지요.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의미에서 직원들에게 따로 연금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바깥에선 선행 많이 한다고 칭찬해주시는데 정작 가족 같은 직원들에게 소홀할 수는 없지요."

유 회장은 기부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단체에서 봉사를 실천해왔다. 경찰서 행정발전위원회 위원, 법원 민사조정 위원,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2만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사)영천시 자원봉사센터 이사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항상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삶에 정부와 각급 기관은 포상으로 귀감을 삼았다. 2014년 대구지방검찰청 표창, 2017년 경북도지사 표창에 이어 2018년에는 법조협회(회장 김명수 대법원장)로부터 법조봉사대상 봉사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상'의 영예도 안았다.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출마하라는 권유를 수시로 받습니다만 그런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저는 빌 게이츠 같은 내로라하는 자선사업가도 아닙니다. 그저 이웃을 도우면서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소시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자식들에게도 늘 돈에 욕심내지 말 것을 강조하지만 주는 만큼 더 행복해지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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