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음악 평론·수필…거장들 삶 실려
♩♬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어린 시절 친구와 마주 앉아 손 율동을 하면서 불렀던 노래다. 긴 세월 삶을 버텨 온 우리네 부모님 세대도 그 시절 친구의 손등을 때리면서 누구나 즐겁게 불렀던 동요, 그리고 2021년 현재 초등학생 꼬마들도 음악시간에 배우는 이 노래. 세대의 파도를 몇 번이나 넘으면서 우리 곁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 노래를, 우리는 누가 만든 곡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짧은 음률이 주는 편안함과 유쾌함은 지친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고 위로하는 데 충분하다.
이 사랑스러운 동요 '퐁당퐁당'의 작곡가는 한국인의 가곡인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다. 귀여움과 처연함을 모두 보여주는 그의 음악을 글로서 추억할 수 있는 책, '음악만필(音樂漫筆)'은 한국에서 출판된 최초의 음악 평론이자 수필이다. 사반세기동안 여행하면서 난파의 마음에, 머리에, 노트에 새긴 다양한 경험을 자유롭게 펼쳐 놓은 글이다. 18세기 베토벤의 광기와 오만을, 19세기 리스트의 정열과 천재성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당시 삭막했던 조선의 청년들에게 꿈과 낭만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두 번의 도일과 한 번의 도미 유학으로 홍난파는 그 당시의 세계적인 음악의 흐름을 몸소 경험하였다. '음악만필'은 세계 거장들의 삶과 사랑, 다양한 음악가들의 뒷이야기뿐 아니라 음악 이론과 관련된 고견, 고전 음악과 시대 음악에 대한 평가 등 상당히 수준 높은 글도 실려 있다. 음악가로만 알려진 홍난파는 일본 유학 시절에 예술 동인지 '삼광'을 창간했고, 3.1운동 발발 후 귀국 후 장편소설 '허영'과 '최후의 악수', '향일초'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또 조선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을 최초로 번역하기도 했다. 만일 그가 선구적인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식민지 조선에서 한 획을 그은 문인으로 남지 않았을까?
경북대 도서관 한 편에서 만난, 80년도 더 지난 빛바랜 서적 '음악만필'은 클래식 음악가가 아닌 새로운 홍난파를 보여주기도 한다. 클래식만이 고급 음악임을 강조하던 그 시절, 그는 당대 유행하던 재즈(Jazz)에 대해 색다른 의견을 표출한다. 당시 재즈는 '신성한 음악에 대한 반역자', '세기말적 퇴폐한 사상과 정신을 표출하는 이단자'로 명명되면서, 덴마크나 러시아에서는 국법으로 재즈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난파는 시대가 원하는 음악,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심신의 자극과 휴식이 되는 재즈야 말로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음악가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의 배경이 없는 예술은 국경을 넘기에는 힘이 든다. 홍난파가 남긴 이 말은 식민지 조선에서 음악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는 시대를 풍미한 모던 보이의 대표 주자였고, 그가 남긴 수많은 가곡과 동요는 나라 잃은 백성의 심금을 울리며 위로해 주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식민지 조선의 국경을 넘기 힘들었고, 그의 명성은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을 뒤로 하고 묻혔다. 조선에 바이올린, 관현악, 가곡, 동요, 재즈 밴드 등 다양한 음악 장르의 씨앗을 뿌렸지만, 시대는 그를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놔두지 않았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사상전향서를 쓴 대가는 참혹하고도 비참했다. '친일파 음악인'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홍난파. 이것은 단지 그의 잘못인가? 시대의 잘못인가? 국경을 넘지 못한 그의 가곡 '봉선화'를 들으면서 난파가 걸어온 그 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하루다.
김경미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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