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한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그곳에 간 적도 없으면서 괜히 아쉬웠다. 실제로 백화점 안에 들어간 일보다는 그 앞에서 약속만 잡은 날이 더 많지만, 대구에서 '시내' 하면 대구백화점을 떠올리는 건 공동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흔한 약속장소 하나가 사라진 것뿐인데 문득 모든 약속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허한 기분을 오래 삼켜야만 했다. 대구 최초의 10층 건물이라는 것도, 전국 유일의 향토백화점이라는 것도 기록해둘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상실감이 언젠가부터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만경관이 간판을 내릴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낸 극장도 멀티플렉스의 리클라이너 좌석을 이기지는 못했다. 한일극장과 아카데미극장이 대형 가맹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익히 봐왔지만 만경관이라는 그 이름이 주는 역사성으로 인해 안타까움은 더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자연히 기억하는 상호들은 그렇게 더 큰 자본에 못 이겨 버티기를 그만두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게 가장 큰 헛헛함은 제일서적이 문 닫은 일이었다. 그곳은 교복을 입기 시작한 때부터 혼자 유일하게 찾아가는 장소였다.
중앙파출소 앞의 그 4층 건물로 들어설 때면 마치 장사 잘되는 내 건물을 둘러보는 듯 흡족했었다. 새로 생겨서 좀 더 세련된 제일문고도 있었지만 제일서적은 본점만이 갖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도서 백화점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넓은 매장에는 세상의 모든 책이, 아니 한 세상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1층의 신간, 베스트셀러만 둘러봐도 하루가 다 갈 텐데 이상한 성격 탓에 꼭 4층의 기술, 자연과학 코너부터 들어갔다. 멀고 낯선 것부터 살피는 것은 그때부터 형성된 오랜 습관이다. 전문 서적으로 가득 찼던 4층은 유독 한산했기에, 나처럼 '이 서점이 내 서점'이라는 착각을 가진 이에게 아늑함을 줄 법했다.
막상 그렇게 꼼꼼히 둘러보고 나면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다음엔 꼭 1층의 문학 책들을 봐야지, 하면서도 다음 주가 되면 또 리셋되어 맨 위층부터 들르곤 했다. 그런 제일서적이 결국 문을 닫고 말았을 때, 본영당서점이나 하늘북서점, 학원서림이 휘청하던 것과는 또 다른 슬픔이 밀려왔다.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무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묻지 못했다. 그 시절 책 보던 언니, 오빠들은 왜 똑같은 뿔테 안경을 꼈는지 묻지 못했다. 안 그래도 촘촘한 계단에 왜 그렇게 잡지를 쌓아뒀냐고 묻지 못했다. 하필 그 잡지를 뒤적이는 사람이 꼭 한둘 있어 옆으로 비껴가도록 만들었는지 묻지 못했다.
한번 문을 닫은 곳은 왜 다시는 다시는 열리지 못하는지, 넘어지면 결코 못 일어날까 봐 그토록 굳건하게 서 있었던 것인지 여태껏 묻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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