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바이든 미 대통령 자세히 보기

입력 2021-07-12 11:20:59 수정 2021-07-12 18:53:10

정상환 변호사(전 주미대사관 외교관)

정상환 변호사
정상환 변호사

20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은 총득표 수나 선거인단 수에서 넉넉하게 승리했다. 바이든은 취임 당시 만 78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다. 2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만 70세였다. 가히 올드 보이들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바이든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흙수저, 가톨릭 신자, 의회주의자이다.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어릴 때 부친이 실직한 뒤 가난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어렸을 때 심한 말더듬증과 불명료한 발음 탓에 친구들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는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거울을 보며 시를 암송하는 등의 부단한 노력 끝에 이를 극복했다. 이처럼 노력형 달변가로 알려진 그는 2008년 대선 경선 시 버락 오바마에 대해 "명석하고 잘생긴 첫 주류사회 흑인"이라고 해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2020년 과열됐던 민주당 후보 TV 토론 과정에서 옛 버릇이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훌륭한 가문의 자식이거나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수재이거나, 혹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인물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미주리의 시골뜨기'라고 놀림받았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정도가 그와 견줄 만하다. 그가 '엉클 조'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애잔한 가족사와 함께 그의 출신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또 바이든은 존 F.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다. 그는 학창 시절 신부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며,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성호를 긋고 성서를 자주 인용하며 주일 미사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 바이든의 책상 앞에는 그가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작은 그림 액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그림은 딕 브라운이라는 만화가가 그린 '공포의 해이가르'라는 제목의 만화에 삽입된 두 컷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난파 직전의 배에서 해이가르라는 바이킹이 신에게 "왜 하필 접니까?"(Why me?)라고 묻자 신이 "왜 너는 안 되는데?(Why not?)라고 되묻는다. 교통사고로 첫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2015년 자신이 못 이룬 대통령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던 첫아들 보마저 뇌종양으로 잃은 바이든은 이 만화를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첫아들을 잃었지만 자신이 결국 대통령이 됐다. 여러 실수로 공격받았을 때에도 그는 "나를 전능자에 비교하지 말고 대안에 비교해 달라"고 응수했다. 이러한 일화들은 바이든의 신앙이 그의 삶과 정치에 얼마나 확고하게 뿌리박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바이든은 낙태 문제로 가톨릭 고위층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최근 미국 가톨릭 지도부는 낙태에 대해 공공연히 찬성하는 정치인 신자들에 대해 영성체를 거부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평신도들은 낙태 문제에 대해 점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보수적인 지도층은 이 문제에 관해 아주 엄격하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기자로부터 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바이든은 "개인적인 문제다.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불편한 기색으로 답했다. 결국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바이든은 합리적인 성향의 민주당원이다. 미국도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대립이 날로 격화되고 있지만, 바이든은 국익을 위해 실용적으로 공화당과 초당적 협력 및 타협에 나선 의회주의자다. 2018년 8월 30일 베트남전 전쟁 영웅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 그는 "내 이름은 조 바이든입니다. 민주당원이지요. 그리고 존 매케인을 사랑했습니다"로 시작되는 강렬한 추도사를 했다. 같은 공화당인 트럼프가 매케인은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전쟁 영웅이 아니라고 비난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됐다. 신디 매케인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장례식을 품위 있게 치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바이든은 두 차례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도 몇 차례 방문했던 지한파 정치인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복잡한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그리고 강단 있게 풀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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