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희 전 대구시 부교육감
한 아이가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리고 있다. 훈장님은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책을 방바닥에 펴 놓고 좌우로 앉아 있는 아이들은 웃으며 귓속말로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한 아이는 책을 밀어 보여준다. 김홍도의 '서당'이란 그림이다.
수년 전에 지리산 댕기 총각의 서당 교육이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그래서 관광차 청학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좁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였고, 기와지붕을 한 몇 개의 서당 간판이 보였다. 아이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냥 평화로운 산골에서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이 잘 되고 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올 2월에 이 평온한 청학동 마을에서 아이들이 상상을 초월한 폭력을 휘둘러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몇몇 훈장은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구속되기도 했다. 우리가 TV에서 봐 왔던 전통 서당을 재현, 아이들의 인성을 다듬어 주는 교육의 장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중순쯤, 이번에는 업무차 다시 청학동을 가 봤다. 서당이란 이름의 시설이 10여 개 있었다. 초·중학생 80여 명이 청학동에 산다고 했다. 낮에는 인근 학교로 등교해 정규 교육을 받고 하교 후에는 서당으로 돌아와 생활한다. 이 아이들은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고 이 서당이란 시설에 수용돼 있었다. 3박 4일간의 인성·예절교육을 받으러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수년간 여기서 사는 것이다.
아이들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만 준다고 크는 게 아니다. 그건 그냥 보육일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속에 심리적 유대감을 기르고 정서도 발달한다. 부모나 형제자매, 또래 친구들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사회성을 기른다. 어린 나이에는 사실 먹고, 자고, 뒹굴고, 다투고, 울고, 떼쓰고, 칭찬받고, 혼나는 이 모든 게 교육의 일부분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집에 가고 싶겠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좋은 서당이어서 아이들의 학교교육을 보완해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아이들은 청학동에서 여러 가지 가정 형편상 단순히 하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아이들의 비행을 막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도록 하는 등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려면 부모와의 스킨십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 이런 모습의 서당에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 소위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교습 행위가 이루어지면 학원법으로 지도 단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교습소나 청소년 수련 시설로도 등록하지 않고 단순히 부모님과 계약에 따라 훈장이 하숙집의 주인이 된다면 공권력이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아동복지법이 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어린 자녀를 집에 홀로 두면 처벌받는다는 규정이 없다. 외국에서는 미성년자인 자녀를 집에 보호자 없이 홀로 두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 교육을 위해 부모의 의무를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어린 나이에 사실상 부모로부터 방치된, 어쩌면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더 강한 보호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적어도 일정한 주기로 반드시 아이들과 부모가 만나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하는 게 필요하다.
청학동에서 수㎞ 떨어진 곳에 묵계초교가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중학교가 있다. 여기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남다른 사명감과 사랑으로 이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있다. 교육은 학교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가정과 지역사회와 학교가 삼위일체가 돼야 전인교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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