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부친 최영섭 대령 별세…6·25 때 고물배로 부산 지킨 영웅

입력 2021-07-08 15:24:23 수정 2021-07-08 19:28:14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그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그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94세의 나이로 8일 별세했다.

최영섭 대령은 6·25 전쟁 때 북한군의 무장수송함을 격침시킨 대한해협해전에 소위로 참전한 전쟁 영웅이다.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진해항에 정박해 있던 백두산함은 "수상한 선박이 발견됐으니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출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8시 12분쯤 조병호 일등수병이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포착했다. 최초 이 보고를 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갑판사관이자 항해사·포술사였던 최영섭 소위였다. 최 소위의 보고에 따라 백두산함은 괴선박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백두산함은 오후 9시 30분쯤 괴선박에 접근했다. 해군의 수송선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배였다. 백두산함은 국제 기준에 따라 검문을 시작했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백두산함은 괴선박 쪽으로 더 붙어 자세히 관찰했다. 갑판 앞쪽에는 대포로 보이는 물체가 포장돼 있었고 중갑판에는 중기관총 2정이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군복을 입은 사람도 목격됐다.

오후 11시 40분쯤 함상회의를 거쳐 괴선박이 북한군이란 결론을 내린 백두산함은 자정이 넘어선 시각 3인치 함포를 경고 발포했다. 괴선박은 이내 중기관총과 포로 대응사격에 나서며 도망쳤다. 교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두산함이 쏜 포는 괴선박의 정중앙에 명중했다. 이 공격으로 당시 괴선박에 있다 수장된 북한군만 600여 명이었다.

당시 백두산함은 고물배에 가까운 배였다. 한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이 가진 배라곤 일본이 쓰다 버린 목선 몇 척이 전부였다. 하는 수 없이 장교와 하사관, 수병이 월급의 일부를 모아 미국상선단사관학교 실습선으로 사용되다 민간에 매각된 화이트헤드함 등 초계정 4척을 사왔다. 4척 가운데 화이트헤드가 백두산함이었다. 한국 해군은 당시 가진 포탄이 100여 발에 불과했다. 고물배에 나무로 만든 모형 포탄을 만들어 장전 훈련만 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일궈낸 소중한 승리였다.

대한해협해전은 한국의 존폐를 가른 중요한 전투로 평가된다. 6·25 발발일 당시 부산을 습격해 위로는 서울, 아래로는 부산을 점령해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던 북한의 첫 계획을 무산 시킨 까닭이다.

최영섭 대령은 예편 뒤에도 한국 해군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1999년 6월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했을 때 손수 최재형 전 원장을 데리고 인천 제2함대를 격려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DJ 정부의 친북 기조로 적극 대응을 못하고 있던 해군에게 최 대령의 방문은 큰 힘이 됐다. 이 내용은 탈원전 감사를 두고 청와대의 압력에 지쳐가는 감사원 직원을 향해 최 전 원장이 직접 쓴 편지에 담기기도 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이 내용과 함께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감사원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감사원장의 대행자로서 감사에 임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감사 대상의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연한 자세로 감사에 임하라"고 했다.

최영섭 대령을 포함 한국 해군이 맹활약한 대한해협해전은 'PC-701 백두산함: 국운을 가른 전승(가제)'이란 이름으로 코로나 종식 뒤 정식 영화화 될 예정이다. 블루스카이엔터테인먼트와 사단법인 대한해협해전기념사업회는 2018년 대한해협 해전의 영화화에 합의한 바 있다. 배해경 블루스카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코로나 탓에 제작이 밀렸다. 현재 대본을 더욱 세밀하게 각색 중에 있다"며 "150억 원을 투입해 코로나가 종식되면 제작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영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최재형 전 원장은 휴식차 지방에 내려갔다 부친 병환이 위독해지자 상경해 아버지 곁을 지켜왔다. 유족으로 재신(전 고려개발사장), 재형(전 감사원장), 재민(최재민소아병원장), 재완(광주대 교수)씨가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실에 빈소가 마련됐다. 발인은 10일이고, 장지는 대전현충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