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자기 자신을 돌보자

입력 2021-07-06 10:56:25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최근 주말과 연휴가 되면 바닷가 호텔이나 깊은 산 속 펜션에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평일에도 유명 휴양시설의 객실은 만원이다. 전망이 좋은 곳이면 어디든 '차박'(차에서 숙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코로나 19는 여전하고, 변이 바이러스로 세계는 긴장 속에 있지만 '자기를 돌보기' 위한 쉼을 찾으려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 올해 상반기, 세계 많은 나라의 유튜브에서 보여주었던 유사한 패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자기를 돌보는' 영상의 부상이다. 특히 '요가', '집 운동', '요리', '집 가꾸기' 등의 키워드가 들어가는 영상의 조회 수는 폭발적이라고 한다. 이렇듯 사회 환경이 힘들수록 자기를 돌보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만 가는 것 같다.

그렇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조차 돌볼 수 없다.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데 헌신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은 직장과 교회,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먼저 챙긴다. 직장 동료나 친구의 가정에 일이 생기면 먼저 달려가 돕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다 상처 받고, 심지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탈진하거나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고귀한 삶이 불행으로 이어진다니 안타깝다. 삶의 지혜는 자신을 잘 돌봐야 삶의 충일함과 건강한 에너지로 다른 사람을 마음껏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돌본다는 것을 오해하여 진정 돌봐야 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엉뚱한 것을 돌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신을 위해 명품을 장만하는 것을 자기 돌봄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자기 돌봄과 자기 배려로 이해하기도 한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자기에게 속한 재산이나 물건을 돌보는 것으로 착각해 자신을 배려하고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끝나기도 한다.

진정한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이란 무엇일까?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자기 돌봄도 마찬가지다. '돌봄'과 '배려'는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서 보살펴주고 돌봐준다는 뉘앙스로 다가온다. 그런데 학문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철학자도 철학을 '자기 배려'의 학문으로 규정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적어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은 '자기 배려'의 학문이었데, 오늘날 철학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푸코는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기"를 '자기 배려'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자기 존재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배려는 '자신을 존중하기', '자신 돌보기'로 통하지만 진정 자기를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이다. 그래서 푸코는 '자기로의 전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행위이고, '자기 안으로 후퇴'하는 행위 속에서 일어난다. '자기 배려'는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해결되지 않는 자기 욕망과 화해하고, 건강하지 못한 호기심에서 돌아서는 행위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진정한 자기 돌봄의 세계로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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