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이런 가게도 있었다. 옷, 가방, 신발로부터 컵이나 접시 같은 온갖 생활용품이 정렬되어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기증 받은 물건을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곳이었다. 가난을 퇴치하고, 호스피스를 후원하고, 암 연구를 지원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돕는 각종 자선단체를 후원하는 이른바 채리티 샵(charity shop)이다. "우리도 있으면 좋겠다.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수년 후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가게'라는 이름으로 생겨났다.
영국인은 사회적 책임감이 강하며 빈곤층에 연민을 가지고 있다. 생활 속에 자원봉사와 자선을 넣고 산다. 도시의 번화가마다 채리티 샵이 정말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있고, 광장에서는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환자를 돕거나 실업자를 후원하는 자선행사 등이 수시로 열린다. 대형마트에는 아이들을 위해 무료 과일 진열대가 있고, 공원과 길가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기리며 기증한 벤치가 놓여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눔'을 선택했다는 게 참으로 멋지다.
나눔은 모든 사람이 중요한 존재임을 아는 일이다. 영국인은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고 후하다. 자신의 정원을 개방해 손님들에게 차와 케이크를 대접하고 받은 입장료를 기부한다. 집에서 작은 채리티 샵을 열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팔아서 기부한다. 자신의 재주를 '하루 요리수업'이나 '30분 승마레슨'으로 만들어 수업료를 기부하고, 자전거를 배워가며 자전거 일주에 도전해 모금한 돈을 기부하는 식이다.
그런 '낯선 아름다움'을 처음 본 순간, 내안에서 뭔가 솟구쳤는지도 모르겠다. 시내에 나갈 때마다 채리티 샵을 들락거렸다. 수십 년째 끌고 다닌 여행 가방을 기증하는데 "고맙다."고 해서 황송했다. 헌책을 사는데 "읽은 후에 다시 기증해 달라."고 해서 또 놀랐다. 그런 마음은 한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대대적인 채리티 샵을 벌였다. 수개월에 걸쳐 물건을 기증받았고 아파트 전체가 수많은 기증품들로 가득 찼다. 수시로 모여서 정리하며 일했고 여기저기에 소문을 냈다. 샌드위치도 만들고 커피도 끓였다. 사람들은 기증하고 봉사하면서 기뻐했고,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면서 즐거워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군가를 돕는 일'과 '누군가와 나누는 일'에 유전인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시간'과 '수고'만으로도 '거액의 기부'가 되는 경험을 6년간 했다.
나는 늘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이 큰 복 같고, 내가 받은 교육과 내가 얻은 기회가 대단한 혜택 같다. 대부분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좋아질 거야." "이런 걸 불평하면 안 되지." "이만한 게 다행이야." "이 정도면 감사하지."라면서, "이런 게 행복이야."라는 사고방식으로 산다. 내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나눔'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삶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 다음에 쓰려고, 더 많이 가지려고 쌓아두지 않는다. 나눌 수 있는 게 돈만은 아닐 거다.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쥐고 있는 것만 나눌 수 있는 게 아닐 거다. 텃밭에서 기른 상추와 오이도 얼른얼른 나누고, 옷과 신발도 서둘러 나눠야겠다. 내가 보고 느낀 것, 한발 짝 먼저 경험한 것, 내가 공부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것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눌 게 많은 것 같다. 몸은 점점 늙고 있는데 진화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훨씬 부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Must one have any reason to help those in need?(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라는 영화 속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 나는 보잘 것 없고 허망한 삶을 시시하지 않게 만드는데 이보다 더 마땅한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쩐지 그러고 싶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그들이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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