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25>최세진이 만든 ‘훈몽자회’

입력 2021-07-03 06:30:00

어린이도 승려도 쉽게 글자 배울 수 있다

훈몽자회 표지
훈몽자회 표지

경북대 도서관에는 어린이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위한 훈몽자회가 소장되어 있다. 요즘은 어린이에게 한글과 영어를 많이 가르치나 조선시대 때는 한문자 교육이 중심이었고, 한글은 곁들여 가르쳤다. 한글 반포 이후, 한자에 한글 토를 붙여서 간행한 최초의 아동용 한자 교재는 초학자회(初學字會·1458년)란 책이다. 세조가 김구와 이승소 등 열두 사람을 뽑아 초학자회를 편찬케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동국정운식 한자음 순서를 취하여 한글로 표기한 한자음을 앞세우고, 이 음에 해당하는 한자들과 각 한자의 뜻풀이를 한글로 달아 놓았다. 예컨대 '동'이란 한자음 뒤에 '東 同 童 冬' 등의 한자를 배열하고 각 한자 밑에 '동녁' 등의 훈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런 순서는 기존의 한자 학습서인 천자문이나 유합과 전혀 다르고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초학자회는 단 한 번만 간행된 후 절판되었다.

이어서 나온 아동용 한자 교재가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이다. '훈몽자회'는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한 글자 모음이란 뜻이다. 천자문보다 훨씬 많은 3,360개 한자의 음과 뜻을 한글로 표기한 훈몽자회는 1527년에 금속활자로 처음 간행되었다. 이 책 머리에 한글을 배우기 쉽도록 설명한 '언문 자모'가 실려 있다. 우리가 쓰는 '기역, 니은, 디귿…' 등의 한글 자모 이름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언문 자모'는 한 장 정도의 분량이지만 한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매우 쓸모 있는 것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한글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사찰 승려가 공부하는 진언집의 책머리에 '언문 자모'를 그대로 옮겨 실었다. 최세진 덕분에 많은 승려가 한글을 쉽게 배웠던 것이다.

최세진은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로 중국어 학습서와 사성통해 등 17종의 저술을 남겼다. 그가 지은 '훈몽자회'는 천자문의 세 배가 넘는 한자를 풀이하여 실었고, 각 한자에 주석까지 붙였다. 한자 넉 자를 한 행씩 짝지어 뜻이 가까운 한자를 서로 이어서 배열했다. 예컨대 신체 내부를 뜻하는 넉 자 '心肝脾肺'(심간비폐)자를 놓고, 각 한자 밑에 '념통 심, 간 간, 말하 비, 부화 폐'와 같이 한글 음과 훈을 붙였다. 얼굴을 뜻하는 넉 자 '顔面形容'(안면형용)를 이어 놓고, 각 한자에 '낯 안, 낯 면, 얼굴 형, 얼굴 용'이라는 한글 음과 훈을 붙였다. 최세진은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자 배열과 한글 풀이에 고심하였다. 3,360자를 각각 넉 자씩 짝지어 외우기 쉽도록 구성하고 주석과 뜻풀이를 하였다. 이 책을 지은 후에 최세진도 천자문을 지은 주흥사처럼 흰머리가 되었을 듯하다.

초간본이 나온 이후 훈몽자회는 전국의 여러 지방에서 재간행되었다. 남쪽으로 고성과 제주도, 북쪽으로는 회령과 상원(祥原) 지방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출판되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훈몽자회는 거제도와 인연을 가진 판본이다. 이 판본은 훈몽자회의 여러 이판본 중 판목이 보존되어 있는 유일본이고, 이 판목에서 찍은 책이 경북대에 소장된 것이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

훈몽자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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