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웃에게 꽃을 선물 받았다. 실은 본인이 선물 받았으나 혼자 보기 아까우니 사람들 왕래가 많은 책방에 두고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면 좋겠다고 기증한 셈이었다. 덕분에 책방에 오는 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특이했던 점은, 테이블 위에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는 동안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는 감탄 뒤에 이 꽃이 진짜인지 물으며 꽃잎을 손으로 한번 만져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인하고 나서야 "너무 예뻐서 조화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 꽃이 시들해지고 꽃잎이 누렇게 쪼그라들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자 진짜인지 묻는 사람도, 꽃을 만지는 사람도 없었다.
가짜가 아닌지 의심 받던 꽃을 보며 진짜와 가짜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엇을 보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까. 흠 없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 '조화'같다고 하고, 너무 예쁜 사람에게는 '인형'같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좋은 풍경을 '그림'같다고 한다. 기대 이상의 좋은 일이 생기면 '꿈' 같다, 멋지고 깨끗한 집을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모델하우스' 같다 하고, 다방면에서 너무 완벽한 사람을 보면 '인조인간', 요즘은 '사기캐(사기캐릭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완벽함에 대해 감탄을 하면서도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수식어를 관용적으로 붙인다.
어쩌면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계절이 변하면 때에 맞게 꽃과 나무는 활짝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그 시들어감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안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밀림의 왕 사자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이치로 이해한다.
인간 역시 늘 이성적인 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되었을 때는 모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도 인간이고 자연의 일부이지만 늙지 않기를, 병들지 않기를, 죽지 않기를, 모든 관계가 화목하기를, 원하는 일들은 모두 성취되기를, 실패가 없기를, 모든 면에서 완벽하길 바란다.
그렇게 바라는 게 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그런 욕망으로 여기까지 진화하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덕분에 지금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누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욕망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괴로움이 있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석가모니는 '인생은 고(苦)'라고 했다. 생로병사의 운명과 삶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음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지만 나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예외이기를 바라며 결국 가짜가 되기 위해 진짜의 시간을 때론 괴로움으로, 때론 열정이란 이름으로 소모한다. 도달하지 못할 완전함을 찾아 헤매다 지금의 온전함을 놓친다.
미래에 어떤 모습이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백발의 할머니로 아름답게 늙고 싶다고 얘기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마음에 없는 소리였나 보다. 올해 초부터 흰머리가 하나 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보일 때마다 거슬려서 바로 뽑아버렸다. 이제 뽑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거울 볼 때마다 한숨을 쉬고 있지만 내년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든 변해있을 것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모습일 수도 있고 염색을 해서 더 까맣게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정불변의 것과 변화무쌍한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가짜와 진짜. 어쩌면 둘 다 모두 실체가 없다. 실체 없는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즐기면 된다. 결국 즐기는 사람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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