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스리랑카 출신 비지타완사 스님

입력 2021-06-17 17:28:41 수정 2021-06-17 22:22:53

2007년 첫 한국 방문 이후 14년째 대구 거주하며 봉사활동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려움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어"

스리랑카에서 온 비지타완사 스님은 14년째 대구에서 살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왼쪽부터 나정호 법률사무소 마루 사무국장, 비지타완사 스님, 피요난다 스님, 김재철 변호사. 이상헌 기자
스리랑카에서 온 비지타완사 스님은 14년째 대구에서 살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왼쪽부터 나정호 법률사무소 마루 사무국장, 비지타완사 스님, 피요난다 스님, 김재철 변호사. 이상헌 기자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Sri Lanka)는 인구 70% 이상을 차지하는 싱할라족 말로 '빛나는 섬' '위대한 섬'이란 뜻이다. '인도양의 진주'라는 별명처럼 동서 교역의 관문이자 실론티 산지로 유명하다. 면적은 한반도의 1/3 크기이고 인구는 2천140만명 정도다.

한국과는 1977년 수교 이래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한류 바람이 불면서 스리랑카는 한국어를 2023년부터 대입시험 과목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최근에는 한국계 여성이 미국의 스리랑카 대사에 내정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직항 비행편으로 8시간 걸리는 먼 이국(異國)이지만 국내 스리랑카인 역시 적지 않다. 대구경북에만 2천명가량이 거주한다. 카투와나 비지타완사 테로(Katuwana Vijithawansha Thero·37) 스님은 이들이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존재이다.

"2007년 7월 불교계 교류행사가 인연이 돼 14년째 대구에서 삽니다. 고국에서 지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하지만 이곳에서 얻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죠. 2008년 문을 연 대구 스리랑카 사원(달서구 이곡동)을 조만간 새로 짓는 게 큰 숙제이기도 하고요."

인구 70%가 불교신자인 스리랑카에선 스님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그가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것은 승복 때문만은 아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누구든 찾아가는 이타심(利他心) 덕분이다.

유창한 우리말로 자신을 '완사 스님'이라 소개하는 그는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겐 숙식을 제공하거나 새 직장을 구해주고 있다. 질병·사고로 아픈 이들은 일일이 찾아 위로한다. 암에 걸린 결혼이주여성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그의 헌신은 국경을 뛰어넘는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마비되면서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 한국 교민들의 소식을 듣고선 현지 정부의 도움을 받게 주선했다. 모금운동을 펼쳐 스리랑카, 인도, 네팔 등지에 식량과 구호물품을 보내는 성과도 거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임금 체불, 산업 재해, 의료 상담, 장례 등 근로자들이 겪는 문제를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려 합니다. 물론 한국인 지인들의 도움이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도 타인의 고민 해결에 진력을 다하는 그의 봉사를 높이 평가했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지난해 12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권익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패를 수여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같은 해 10월에 감사장을 수여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임원을 지낸 사지 멘디스 주한 스리랑카 대사는 추천서에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스님"이라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고, 이타주의적 사고를 갖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베풂을 아끼지 않는 완사 스님은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로부터도 존경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구 스리랑카 사원에 나오는 한국인 불자가 10여 명에 이른다.

법률사무소 마루의 김재철 변호사와 나정호 사무국장도 그렇다. 이들은 2년 전부터 완사 스님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무(勞務) 관련 민원 해결을 돕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나 무료 상담도 해주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완사 스님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스님은 어짜피 모국에 가더라도 자가격리 탓에 장례식에 참석하기 힘든 만큼 한국에서 당장 어려운 이들을 돕고 추후에 가겠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완사 스님은 9살 때 행자(行者)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7년 출가했다. 한국에선 용연사, 극락사, 성주사에서 불교를 공부하며 수행정진해왔다. 올해 5월에는 스리랑카 종단으로부터 한국 총무원장에 임명돼 양국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이란 중책도 맡았다.

"저의 주황색 승복과 피부색을 낯설게 바라보거나 마음 아픈 말을 건네는 분이 가끔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를 하다 보면 외국인에 대한 오해는 사라질 겁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어서 끝나 함께 어울리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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