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자금 조달 목적…이승만 초상·광화문 담아, 일본서 10여일 만에 찍어
1950년 7월 22일 첫 유통…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화폐전시실 랜선투어' 3부작 영상 공개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는 과거 한국전쟁 도중 대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화폐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16일 한은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한국전쟁 발발을 보름가량 앞둔 1950년 6월 12일 서울 남대문로 일대에서 설립했다.
원래라면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즉시 설립해야 했으나, 한동안 미 군정법에 따라 당시 존재하던 조선은행이 계속해 조선은행권(원화)을 계속 발행했다. 조선은행은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한 식민지 중앙은행이다.
한국은행 설립 직후 한국전쟁이 일어난 탓에 한국은행권은 곧장 발행되지 못했다. 한국은행 본점도 대전으로 급히 이전했고, 본점 금고에 있던 금괴와 조선은행권도 일부만 옮길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한 조선은행권은 전쟁자금으로 쓰기에 그 액수가 부족했다. 이에 한국은행은 최초의 한국은행권 지폐 천원권과 백원권을 발행키로 했다.
불과 10여 일 만에 제작을 마쳤다. 한국은행은 일본 정부에 요청해 일본대장성인쇄국에서 화폐를 인쇄했다. 통상 지폐에는 돌출부위를 만들어 주는 요판인쇄(볼록인쇄)를 쓰지만, 전쟁 중임을 고려해 일반 인쇄로 시간을 단축했다.
화폐를 급박히 만들다 보니 마땅한 도안 원본이 없어 주일대표부(현 주 일본 대한민국 대사관)가 소장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 초상과 광화문 사진을 각각 인용해 넣었다.
이렇게 만든 1천원권이 152억원어치, 100원권이 2억3천만원어치에 달했다.
새 은행권은 1950년 7월 13일과 14일 미군용기로 김해공항에 도착해 같은 달 22일 피난지 대구에서 최초로 발행, 유통됐다.

이후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해 한국은행에서 약탈한 조선은행 1천원권과 100원권을 불법 발행해 경제를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은행은 조선은행권 유통을 정지시키고 1950년 9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6일까지 5차례에 걸쳐 국민이 보유한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해줬다. 전쟁통에 조선은행권 시대 막이 내렸다.
한은 대구경북본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구경북본부 화폐전시실 랜선투어' 3부작 영상을 이날 한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1부 최초의 한국은행권 ▷2부 최단명 은행권 ▷3부 최초의 기념주화와 기념지폐 등이다.
1부에서 대구에서 발행한 최초 한국은행권을 소개한 데 이어 2부에서는 가장 짧게 유통된 은행권(1962년 5월 16일부터 24일 유통된 개갑 백환권)을 소개했다.
3부에선 우리나라 역사와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1971년 3월 2일 발행한 최초의 기념주화를 보여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바라며 2017년 11월 17일 발행한 최초의 기념지폐(2천원권) 모습도 담았다.
대구경북본부는 화폐전시실에 보유한 전시물 중 역사성·상징성이 높은 전시물을 선정, 이를 근접 촬영해 영상을 제작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높아진 비대면 서비스 수요를 채우려는 취지다.
대구경북본부 화폐전시실 랜선투어는 '한국은행 홈페이지(www.bok.or.kr)-지역본부(대구경북본부)-본부안내-화폐전시실'에서 시청할 수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이번 랜선투어를 계기로 많은 국민이 온라인에서 본부 화폐전시실을 체험하고 우리 화폐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도 높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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