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아타투르크의 혁명

입력 2021-06-07 11:33:06 수정 2021-06-07 18:46:31

이진숙 전 대전MBC 대표이사

이진숙 전 대전 MBC 대표이사
이진숙 전 대전 MBC 대표이사

터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을 꼽으라면 터키 사람들은 주저 않고 아타투르크를 이야기한다. 관공서는 물론 식당이나 평범한 가게에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하기야 터키의 관문인 공항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는가. 그뿐인가. 터키의 화폐 리라에는 모든 지폐에 아타투르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액면가는 달라도 한쪽 면에는 아타투르크의 얼굴이 있고, 뒷면에만 각기 다른 역사적 인물을 넣도록 했다. 미국의 국부로 꼽히는 조지 워싱턴도 화폐에서는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

내 친구 베르나의 경우는 한술 더 떴다. 아타투르크의 명함판 사진을 자기의 애인이라도 되는 양 지갑에 넣어 다니는데, 지갑을 펼 때마다 비닐 위로 아타투르크의 엄숙한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베르나는 멀쩡하게 결혼하여 미남 남편과 함께 아들 둘을 거느리고 잘 살고 있는 방송사 간부인데 말이다. 아타투르크, 터키의 아버지란 호칭이 본명인 무스타파 케말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도대체 케말은 어떤 인물이기에 사망한 지 80년도 넘었는데 이런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 비대하고 노쇠해진 오스만제국은 맹위를 떨치던 영국과 프랑스 등 강대국과 인접 경쟁국인 그리스 등에 의해 나라가 산산조각 날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이 위기 속에서도 술탄과 주변 인물들은 그저 자리를 지키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르사유궁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돌마바체궁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사무실과 침실을 포함해 방이 285개, 연회장 43개, 터키식 목욕탕 6개, 정원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의 '돌마바체'궁은 600년 제국의 빛나는 상징이었다. 짓는 데만 11년이 걸렸다는 궁전 건설에 500만 오토만 금화, 지금 돈으로 5억 달러, 6천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1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강대국에게 분할될 위기에 나타난 인물이 무스타파 케말이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 해군 장관 처칠이 이끄는 엘리트 군대를 격파한 케말은 이 전투의 승리를 바탕으로 단번에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가 오스만제국이 현재의 터키 영토인 아나톨리아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급부상한 무스타파 케말은 낡은 제국 오스만의 해체를 선언했고 동시에 근대 터키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무스타파 케말은 쿠데타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그저 그런 통치자로 기억되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터키의 역사는 케말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슬람이라는 전통 종교가 근대화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케말은 종교를 정치로부터 분리하였다. 여성이 히잡(머릿수건)을 써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고 남녀 자유 연애를 허용했다. 여성의 학교 교육을 허용하고 이혼과 상속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했다.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혁명적인 것은 아마도 '문자 개조'일 것이다. 오스만제국은 아랍 알파벳을 사용하였는데, 아랍 글자는 익히는 데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케말은 언어가 어려우면 교육이 힘들고 교육 없이는 국가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랍어 문자를 라틴 문자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언어학자들이 이에 필요한 시간이 3년에서 5년이 걸린다고 하자 3개월에서 5개월이면 된다며 밀어붙였다. 단 몇 달이면 배울 수 있는 쉬운 문자를 보급하면서 문자 해독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교육이 확대되면서 터키는 중동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국이 몰락할 무렵 혜성같이 나타난 지도자가 혁명적으로 국가 개조를 하면서 늙은 제국은 젊은 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조직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걸 아타투르크의 사례는 보여준다. 그가 갈리폴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34세, 그 승리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42세였다. 지금도 그가 사망한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그의 사망을 추도하는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들은 차를 멈추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1분간 묵념을 한다. 그가 숨진 돌마바체의 침실 벽 시계는 9시 5분에 멈춰 서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