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 새콤달콤 과학 레시피] 맛을 살리는 특별한 비법

입력 2021-06-07 14:14:37 수정 2021-06-07 20:00:10

음식마다 '맛있는 온도' 따로 있다

혀의 미각 지도
혀의 미각 지도

"아이스크림을 왜 전자레인지에 돌리세요?" 라며 딸이 물었다. 아이스크림을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면 무슨 맛일까? 라는 생각으로 한 번 해본 것인데 때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딸에게 딱 들켰다. 냉동실에서 꺼내 먹은 아이스크림은 시원하고 참 맛있었다. 그런데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니 맛이 있기는 있는데 맛이 없었다. 단맛만 무척 강하게 느껴지고 맛이 없었다. 분명 똑같은 아이스크림이 온도만 달라졌는데 왜 이렇게 맛이 달라지는 것일까?

음식의 맛은 그 안에 들어있는 재료 성분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해왔는데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온도'다. 이제 음식의 맛과 이에 영향을 미치는 온도는 무슨 관계일까?

된장찌게

'맛'의 실체는 뭘까?

'새콤달콤하다', '구수하다', '느끼하다', '쌉싸래하다', '달달하다', '달착지근하다', '짭조름하다', '담백하다', '떫다', '맵다', '싱겁다' 등 맛을 표현하는 우리 말은 무척 많다. 이외에도 '불맛', '매운 맛', 심지어 '빨간맛'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흔히 우리가 매운 맛이라고 일컫는 것은 사실 맛이 아니라 매운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과 같은 성분이 입 안 표피를 공격해서 화끈거리고 따끔하게 느끼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맛은 딱 다섯 가지밖에 없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왜냐하면 우리 입의 혀에는 이 다섯 가지 맛을 감지하는 다섯 가지 종류의 센서들만 있기 때문이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한 술 떠서 입에 넣었을 때 짠맛이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짠맛을 내는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짠맛을 내는 물질이 바로 소금인데 다른 말로는 염화나트륨(NaCl)이라고 부른다. 이 소금이 된장찌개 안에 들어가면 염화 이온과 나트륨 이온으로 분리된다. 우리가 된장찌개를 한 술 떠서 입에 넣으면 그 용액 속에 녹아있던 나트륨 이온이 혀의 표면에 있는 나트륨 이온을 감지하는 센서를 건드린다. 그 순간 그 센서가 작동해서 우리는 '짜다'고 맛을 느끼게 된다. 생물학자들은 혀의 센서를 '미뢰(味蕾)'라고 부르는데 다섯 가지 기본 맛을 느끼는 각각의 맛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인 맛을 내는 성분들을 보면 단맛 성분은 포도당, 과당, 자당, 사카린, 아스파탐 등이 있고 짠맛 성분은 염화나트륨과 같은 것이 있다. 쓴맛 성분은 카페인, 퀴닌 등이 있고 신맛 성분은 시트릭산과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감칠맛을 내는 성분은 조미료의 주성분인 'MSG'라고도 불리는 글루타민산이다.

진짜 맛은 '입'이 아닌 '뇌'가 느낀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한 입 베어 먹으면 혀에 느껴지는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참 좋다. 이처럼 우리는 입의 혀로 맛을 느낀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진짜 맛은 뇌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모닝커피 한 잔을 생각해보면 이것을 이해하기 쉽니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으면 즉각 혀의 쓴맛 감지 센서가 카페인을 감지한다. 그 센서는 전기신호를 재빨리 신경이라는 도선을 통해 우리 뇌로 보낸다. 수퍼컴퓨터와 같은 뇌는 순식간에 그 전기신호를 분석하여 커피 맛이 '쓰다'라고 인식한다. 또한 동시에 입 안의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커피 향이 코로 들어가 코의 후각센서를 자극한다. 이로인해 후각 센서도 커피 향을 감지한 전기신호를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커피 잔을 바라볼 때 생기는 눈의 시각 센서가 만드는 전기신호와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손의 촉각 센서가 만드는 전기신호도 뇌로 전달된다. 이처럼 우리 몸의 다양한 감각 센서들이 보내온 신호들을 뇌가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커피 맛이 쓰다' 또는 '역시 아메리카노가 최고야!'라고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음식의 맛과 온도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는 1930년대에 한(Hahn)과 군더(Gunther) 등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대에 신경 전기생리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온도의 변화에 의해 맛이 달라지는 현상과 관련된 신경의 변화에 관해 연구되었다. 이렇게 단편적인 연구가 이어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음식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온도의 실체가 드러났다. 바로 벨기에 루벤대학 연구팀이 'TRPM5'라는 이온채널의 존재와 역할을 밝혀냈는데 이것이 온도가 달라졌을 때 음식의 맛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드는 실체였다. 즉 이 이온채널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면 맛을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하는 작용을 하는데 이로인해 우리는 맛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된장찌게

가장 맛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맛에 관한 연구 논문들을 찾아서 읽다가 초파리를 이용하여 실험한 논문을 읽다가 웃음이 터졌다. 이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크레이그 몬텔 연구팀이 지난해 커런드 바이올로지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결과다. 이 연구팀은 초파리가 좋아하는 설탕이 들어있는 음식을 이용하여 온도만 조금 다르게 한 후 초파리가 좋아하는지를 테스트했다. 과학적으로 어려운 과정을 통해 실험한 내용을 정리하여 표와 문장으로 표현해 놓은 논문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파리 한 마리가 달달한 음식 앞에서 앞 발을 비비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어 웃음이 났던 것이다. 이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한 마디로 말하면 초파리는 상온에서 몇 도 정도만 온도가 내려가도 단맛을 내는 음식에 흥미를 잃어서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팀은 그 이유도 밝혀냈는데 이것은 음식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서 단맛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쓴맛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에서도 나타난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다가 한참 두어서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면 쓴맛이 강하게 난다. 이처럼 음식의 맛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서 따뜻하게 또는 차갑게 먹어야 맛있는 것들이 서로 다르다.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수박, 사과 등은 차갑게 먹어야 맛있다. 반면에 된장찌개나 설렁탕, 피자, 파스타 등은 뜨겁게 또는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다.

"식기 전에 밥 먹어!"라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옛날부터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외쳤다. 이처럼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경험적으로 따뜻한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음식의 맛과 온도에 관한 것은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식품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다. 최근 음식의 맛에 미치는 온도의 영향과 관련된 원리와 작동 메커니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머지않아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맛있게 느끼는 온도에 딱 맞춘 음식들을 먹을 날이 곧 올 것이다.

김영호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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