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창호(경북청년CEO협회장) 씨 조부 故 박노덕 씨

입력 2021-06-06 14:19:44 수정 2021-06-06 18:03:45

광복군에서 사진 기술로 독립운동 기록 남기셨죠…'훌륭한 사람 되라'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1988년 4월 故 박노덕 씨가 손자 박창호 씨를 안고 있는 사진. 가족제공.
1988년 4월 故 박노덕 씨가 손자 박창호 씨를 안고 있는 사진. 가족제공.

할부지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아니 할부지. 짜장면을 좋아하던 철없던 어린 손자가 서른여섯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고, 그럭저럭 시건(철)도 들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지금에서야 손자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만날 수 없음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엄마, 아빠보다 할부지였습니다. 기차를 좋아했던 저에게 하루에 한 번 기차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역으로 데려가 기차를 보여 주셨고, 매해 겨울이면 나무판자와 대나무, 한지를 구해 썰매와 연을 만들어 주셨지요. 저는 그때의 그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겨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도 딱지를 달고 살았던 저에게 가장 좋은 딱지는 할부지가 접어주신 그 딱지였고, 맥가이버 할부지가 바퀴 달아주신 네발자전거. 물건을 잘 잃어버렸던 저는 할부지 손을 잡고 자전거를 찾기 위해 동네를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매번 동네목욕탕에 데려갔는데 왜 손자는 시원하게 할부지 등 한번 밀어드리지 못했을까요.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할 즈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할부지입니다. 지금도 할머니는 할부지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틈만 나면 합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홀로 일본으로 밀항하여 타국에서 사진기술을 배우고 돌아오셨습니다. 스물이 채 되기도 전에 부산에서 만주에 있는 노보리 척사부대로 징집되셨고, 이후 어두운 밤을 틈타 만주에서 탈출하여 광복군 김구 선생, 이청천 장군과 함께 활동하셨습니다.

해방 이후에 상해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를 비롯해 일본에 의해 중국에 끌려간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아 귀국을 못 할 때 공장과 창고를 빌려 숙식을 제공하고 미군과 협의하여 7차에 걸쳐 한국으로 귀환시키며, 마지막 7차 귀환 때 이청천 장군과 함께 귀환하셨다고 말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있는 박노덕 씨 젊은 시절 모습. 가족제공.
사진기를 들고 있는 박노덕 씨 젊은 시절 모습. 가족제공.

광복군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배운 사진기술로 독립운동의 기록을 남기셨고 수많은 기록물을 나라에 기증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수많은 역사를 기록했지만 정작 자신의 광복군 활동 사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 본인이 촬영한 사진에 본인이 없다는 이유로 유공을 인증받지 못하자 "보상을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고, 기증한 사진들이 독립기념관에 전시될 때 몇몇 사진들의 기증자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을 때도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지요.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가르침에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 되물으니, 사회에 도움 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하셨지요. 손자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기억 속 할부지는 맥주를 많이 좋아하셨는데, 저녁에 맥주 한병 놓고 손자 훌륭하게 살고 있다 자랑하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음이 슬픕니다. 대신 할머니에게 자랑을 가끔 하는데 할부지 만나면 자랑하겠다며 수십번은 들었을 옛날 할부지 이야기를 또 합니다. 족히 수십, 수백번은 들은 이야기지만 손자는 들을 때마다 할부지 손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할부지가 돌아가신 지 11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상실감은 많이 잊혀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커져만 갑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현충일에 유난히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마음속 가장 큰사람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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