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준석 돌풍으로 전당대회가 범국민적 관심을 모으자 국민의힘과 지지자들, 보수언론에서는 고무된 눈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를 부러워하며 내심 긴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거기다 조국이 '비망록'까지 출간하여 재보선 참패 이후 쇄신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민주당에서 긴장할 만도 하다. 그 바탕에는 2030과 6070의 결합으로 4050이 고립되는 양상이 이번 재보선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아예 하나의 장기적인 경향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실제로 10년에서 20년 후에는 그들이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이 나라의 주역이 된다.
이준석 돌풍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나는 보수당의 쇄신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다. 쇄신의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세대교체'가 국민들 사이에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진 것이다. 보수층에서는 그를 통해 재보선의 승리 공식이 그대로 대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그에게 콘텐츠가 없다는 데 있다. 여성할당제와 가산점의 폐지라는 시대착오 외에 그가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주택난 등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은 기억이 전혀 없다. 즉, 대표가 생물학적으로 젊어지는 것 외에 당 '쇄신'의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대선은 재보선과 달리 회고 투표가 아니라 전망 투표의 성격을 띤다. 국민은 대선 후보에게서 과거의 심판이 아니라 미래의 기획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아직 대선에서 중도층을 견인할 만한 새로운 콘텐츠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당내 대권 주자들의 지지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 밖에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직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확인된 바 없다.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여당의 '검찰 개혁'은 이제 종식 국면에 들어갔고, 박범계 장관과 여권의 강경파들이 '검수완박'을 외치며 무리수를 두더라도 그 반사이익이 이제는 이미 퇴임한 그에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대선 후보로서 제 메시지를 내려면 자신이 선점한 '공정'의 가치를 소극적인 것에서 적극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법적·형식적인 차원의 공정을 경제적·실질적 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 이준석이 열심히 외치는 '능력주의' 슬로건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제도가 외려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청년할당도 폐지하겠단다. 그가 생각하는 공정은 방배동 조민과 구의역 김 군 둘이 같은 규칙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즉 그 두 젊은이의 출발 조건 자체가 다르다는 인식이 그에게는 아예 없다.
그가 누리는 영향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0대 젊은이들의 능력주의 성향에 그대로 편승하는 데서 나온다. 결국 '내가 여성할당이나 청년할당 등 부당한(?) 제도를 폐지하여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줄 테니, 각자 알아서 문제를 제 실력으로 해결하라'는 얘기다. 이건 정치인이 할 얘기가 못 된다.
한마디로 보수가 업그레이드된 것이 아니라 과거보다 다운그레이드된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게 보수의 '쇄신'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국민의힘은 사실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준석이 낙선하면 '역시 저 당은 구제 불능'이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고, 그가 당 대표가 되면 그 당은 정말로 구제 불능이 된다. '유승민계인 그가 경선을 공정히 관리할 수 있는가' '0선인 그가 윤석열·안철수까지 포함한 대선의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가'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중도가 필요하다. 재보선에서는 중도와 보수가 정권에 대한 '분노'라는 끈으로 함께 묶였지만, 대선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중도층과 국민의힘이 일종의 '가치' 연합을 형성해야 하는데, 둘이 공유할 미래가 없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겉보기와 달리 보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깊이 우려한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애국가 부른게 죄?' 이철우 지사,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여권 잠룡 홍준표·한동훈·오세훈, "尹 구속 취소 환영·당연"
이재명 "검찰이 산수 잘못 했다고 헌정파괴 사실 없어지지 않아"
홍준표 "尹탄핵 기각되면 혼란, 인용되면 전쟁…혼란이 나아"
민주당 "검찰총장, 시간 허비하며 '尹 석방기도' 의심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