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세연 씨 할머니 故 장경자 씨

입력 2021-05-30 14:12:28 수정 2021-05-30 14:40:19

2003년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할머니 장경자 씨와 손녀 박세연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제공.
2003년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할머니 장경자 씨와 손녀 박세연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제공.

그날은 유독 찬란한 봄날이었다. 4월의 둘째 날, 벚꽃은 만개했다. 동기들은 벚꽃을 구경하며 봄을 만끽하였다. 이틀 전, 할머니께서 계신 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몇 달 만에 본 할머니는 너무 부어있었다. 그날 너무 슬퍼서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12시 전에 잠들었고, 정말 오랜만에 푹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와있었다. "세연아,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어." 그날은 참으로도 비가 궂게 내렸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나를 예뻐하셨다. 수많은 사진에서는 할머니께서 나를 씻겨주시고, 나를 안아주시고, 나를 돌봐주고 계셨다. 그리고 어릴 때 할머니 댁이 가까워 자주 놀러가고, 또 자주 잤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운동회, 졸업식 등 각종 행사에는 항상 할머니께서 오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노란 떡볶이 코트를 입었던 날이 기억난다. 정말 내 기억 속 여러 장면마다 할머니는 늘 계셨다.

우리 할머니는 1살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3살 때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시면서 혼자가 되셨다. 지독한 가난과 싸웠던 1940년대 고아였던 할머니께 세상은 냉혹했다. 작은어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그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어려서 잘 먹지 못하고, 편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할머니의 키는 150cm도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정말 불운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님 없이, 어린 나이에 시집가서, 온갖 고생 다해서 자식들을 길렀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 노후에는 몸에 성한 데 없어 오래도록 고생을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할머니의 인생을 불운한 삶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누구보다 열심이고, 누구보다도 나누는 삶이었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것에 익숙하셨고, 늘 나눌 줄 아셨다. 나도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데, 할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문턱은 할머니께서 하고 싶은 말을 듣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것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사실 할머니의 죽음이 슬픈 것도 있지만, 할머니께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지, 왜 우리 할머니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시지 않은 것인지 화가 났던 것도 있다.

할머니께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머니께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자리를 빌려 전해보고자 한다. 정말 많이 고마웠다는 말,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할머니께 드린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도 많이 베풀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표현에 인색해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도, 한껏 해드리고 싶다.

드린 거라곤 대학교 1학년 때 겨울 양말 세트밖에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좋다면서 그걸 겨울마다 신고 계시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앞으로도 많이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할머니께 전하고 싶다. 고마운 일이 한 두가지는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나랑 동생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손녀딸이 죄책감 안 갖게 정말 힘들었을 텐데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할머니 손녀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고, 정말 고마웠고, 할머니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잘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 부디 편히 쉬면서 지내길 바래□. 정말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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